우리말글 사랑의 시초, 한글학회를 가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김수인 기자

suin_325@naver.com


조선어학회의 명맥을 이어가며 꾸준히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글학회.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조선어학회’는 알고 있으면서 ‘한글학회’란 이름은 생소하게 느끼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26일 기자는 종로구 한글회관에 있는 한글학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한글학회가 108년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이곳은 우리말글이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 한글학회가 있는 한글회관 건물

▲ 한글학회 사무실 입구

사무실에 들어서니 벽면을 가득 채운 서랍장과 그 위에 놓인 조선어학회 학자들의 초상화가 눈에 띄었다. 빼곡한 서랍장 안에는 사전 편찬 작업 당시 활용했던 낱말 뜻풀이 자료가 글자 순으로 보관돼 있었다. 연구원의 도움으로 살펴본 단어 종이엔 손으로 하나하나 단어와 그 뜻을 연구한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종이가 누렇게 바랜 것처럼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사무실을 둘러본 후엔 학회 회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무실 내부 자료보관함▲ 서랍 속에 들어 있는 낱말 뜻풀이 종이

 

들어는 봤나?! 한글학회!

 

한글학회를 낯설어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한글학회는 과연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권재일 회장 : 1908년에 창립한 한글학회는 그 이후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목표로 삼았다. 지킨다는 것은 일본말의 침투로부터 우리말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이 지키는 일이고, 가꾸는 것은 말을 지키는 데 필요한 사전과 맞춤법을 정하고 알리는 일이다. 그래서 최초의 사전을 편찬하고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를 제정해 국민에게 보급하는 일을 했다. 이렇게 만든 것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의 기초가 된 것이다.


▲ 한글학회에서 발행하는 「한글 새소식」

지금은 크게 두 가지로 학술활동과 국어운동활동을 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연구하는 것과 이를 잘 가꾸고 발전시키는 것이 한글학회의 목적이다. 우선 학술활동은 전국적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에 관한 분야별·지역별 학회가 많이 있는데, 한글학회는 모든 분야와 각 지역을 아우르는 맏형 학회로서 활동하고 있다. 1년에 2번 세종날(5/15)과 한글날(10/9)을 기념해 큰 학술대회를 연다. 원로학자는 물론 중견, 신진학자도 초청해 학술발표와 토론을 해 우리말글이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 학자들을 대상으로 우수한 논문을 싣는 「한글」이라는 학술지도 1년에 4번 발행한다. 매번 우수한 논문 7~8편 정도를 게재하는데 지난 5월엔 20편이 들어와 한글 지에 글이 실리기는 대단히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매월 일반 대중을 위한 「한글 새소식」 이라는 잡지를 발행해 배포한다.

 

▲ 한글회관 입구

국어운동의 경우 우리 국민이 정확하고 품격 있는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활동한다. 어려운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을 다듬어 보급하고,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이나 온갖 상호, 간판이 외래어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순화하려고 노력한다. 그 방법으로는 교양 강좌를 열기도 하고, 한글 새소식의 글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다양하다. 쉽고, 정확하고, 품격 있는 말로 국민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글학회, 이렇게 걸어왔다!

 

오래된 역사만큼 다양한 활동을 해왔을 텐데, 시기별 중점을 둔 활동은 무엇일까?


권재일 회장 : 초기에는 한글 표기법과 말의 표준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1933년에 한글맞춤법을, 1937년엔 표준어를 사정했다. 그 이후엔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 1957년에 완성했고, 그것을 더 보완해서 1992년엔 『우리말큰사전』 최종판을 냈다. 그 뒤로 종이 사전은 만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어서 이를 CD로 만들어 배포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웹 기반 사전을 만들어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보급할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교육 활동으로는 특히 일제강점기에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광복 후 각 지방에서도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한글학회 부속 중등교육양성기관을 만들어 전국 학교에 교사를 파견하기 위한 교육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방향을 두고 있다. 각 나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원들을 불러 연수를 진행하고, 어떻게 하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칠지 늘 고민한다. 또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능력시험을 만들었다. 아직은 민간공인단계지만 앞으로 국가공인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1997년 한국어능력시험을 처음 봤을 때 2,000명이 응시했는데 올해는 30만 명이 응시했다. 앞으로 경제가 더 발전하고 드라마나 가요가 해외로 더욱 진출하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고, 한글학회가 노력할 부분이 많아질 것이다.


현재는 앞서 설명한 학술활동, 국어운동활동, 교육활동 외에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시민강좌도 연다. 더불어 한글 맞춤법 관련 민원을 전화로 받아 해결하는 일도 한다. 또 한글문화연대와 공통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투쟁활동도 하고 있다. 초등학교 한자 교육이나 한글날 이전 문제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하며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같은 듯 다른 듯, 국립국어원과 한글학회

 

권 회장님은 국립국어원장으로도 일한 적이 있으신데, 대학생들에게도 친숙한 국립국어원과 한글학회는 어떤 관계일까?


권재일 회장 : 한글학회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해왔던 중요한 기능이 사전을 편찬하고 어문규범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정부에서 보기에 ‘이렇게 중요한 일을 민간기구에 맡겨둘 수 없겠다’ 싶어 국립기관을 만든 것이 바로 1991년 설립된 ‘국립국어연구원’이다. 이에 사전편찬과 어문규범 관리 기능이 이곳으로 이관해서 기존의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일을 국가가 하게 돼 한글학회는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하게 됐다. 그래서 현재 가장 표준이 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은 국립국어원에서 1998년에 만든 것이고, 맞춤법이나 표준어 등 어문규범 관리도 국립국어원이 도맡고 있다.

이와 같은 기능 이전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두 기관이 초기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말과 우리글을 발전시킨다는 목표는 같으므로 지금은 협력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국립국어원이 생긴 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 한글학회보단 국립국어원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발이 아파요? 팔이 아파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어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권재일 회장 : 매력은 특징을 좋은 쪽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어는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반영돼 높임법이 발달해 있다. 그것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처럼 특징은 긍·부정의 양면을 갖는다. 어휘에서도 한국어는 색깔,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해 같은 개념이라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를 섬세하게 분화됐다고 보면 매력일 수 있다. 말소리 측면에서는 한 자음이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소리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영어는 유성음과 무성음 두 가지뿐인데, 한국어는 소리가 더 다양하게 분화한다. 실제로 병원에서 미국 사람이 아픈 발을 만지면서 “팔이 아파요.”하기도 했고, ‘폐가 아프다’란 말에 폐를 진찰했는데 알고 보니 ‘배가 아프다’였다.(웃음)

 

원리가 있어 가장 빛나는 글자, 한글
 
우리말의 매력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우리글인 한글의 매력은 무엇일까?


권재일 회장 : 한글은 만든 때와 만든 사람, 그리고 만든 원리를 적은 책이 있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한글은 바로 이 세 가지를 갖춘 유일한 글자이기 때문에 가장 빛나고 자랑스럽다. 유네스코에서도 1997년 ‘글자를 만든 원리를 적은 유일한 책’임을 인정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한글을 말할 때 늘 앞세우는 자랑거리가 바로 이 점이다. 그 외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휴대전화 자판에 한꺼번에 들어가는 글자도 한글뿐이라 현대에 적합하다. 또한, 학문적으로도 자음과 모음을 따로 만든 글자 역시 한글이 유일하다.

▲ 제60대 한글학회 회장 권재일 교수

아픈 우리말글엔 자긍심이 약!

 

이렇게 우수한 우리말글인데도 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은 우리 것에 소홀한 것 같다.


권재일 회장 : 이런 실태는 우리말과 우리글에 자긍심을 가지면 해결된다. 요즘은 상표나 간판, 과자 이름 하나만 해도 외국 글자로 된 것이 많다. 사람들이 ‘한글로 된 상품의 품질이 좋을 것’이란 의식이 있으면 상품 만드는 이들에게 외국 글자를 쓰라고 해도 쓰지 않을 것이다. 영어로 쓰면 사람들이 선호하고 잘 팔리니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말과 우리글에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 가장 먼저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자긍심을 어떻게 갖게 하느냐가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우선 소통을 하다 보면 그 방법을 찾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난 5월부터는 「한글 새소식」에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퀴즈를 만들었다. 특히 역대 회장들과 달리 젊은 편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말글 사랑은 균형 있게

 

올해 임기를 시작하셨는데, 임기 동안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싶으신지?


권재일 회장 : 현재 한글학회가 해야 할 과제인 학술활동과 실천운동,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겠다. 학문적으로만 활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실천운동을 하면서 이론적인 바탕 없이 목소리만 낸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두 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우선 학회의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릴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봄에는 의미론이 주제였는데, 당대 의미론 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발표를 시켰다. 또한 「한글」에 실릴 논문도 엄밀하게 심사해 역사가 오랜 만큼 수준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실천운동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반대시위 등 투쟁이 많았는데, 이런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언어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할 것이다. 시민강좌도 먼저 다가가려는 취지에서 한글학회도 소개하고, 우리말글을 발전시키기 위한 강의를 명강사들이 할 예정이다. 직접 시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덧붙여 젊은이들이 즐기는 웹툰이나 게임 등을 활용해 젊은 사람들이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