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146] 성기지 운영위원

 

모지랑이와 바람만바람만

 

우리가 어려운 한자말을 앞세워 으스대고 영어를 숭배하는 말글살이를 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나날살이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거나 이미 낯설게 돼버린 우리 토박이말들이 많아졌다. 그 가운데는 꼭 붙잡고 싶은 아름다운 말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지랑이’와 ‘바람만바람만’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순 우리말이다.


한복 저고리 치맛단을 끌고 다니다 보면 끝이 닳아서 없어질 수가 있다. 땅에 끌리도록 길게 입는 청바지도 마찬가지다. 또, 교실 책상을 오랫동안 쓰다 보면 네 귀퉁이가 닳아서 뭉툭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어떤 물체의 끝 부분이 닳아서 없어지다”는 뜻으로 쓰이는 우리말이 바로 ‘모지라지다’이다. 붓글씨를 오래 쓰면 붓끝이 닳아서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붓이 모지라졌다.”고 말한다. 이렇게 모지라진 물건을 옛 사람들은 ‘모지랑이’라고 불렀다. 솔이 거의 닳아서 못 쓰게 된 붓도 모지랑이고, 네 귀퉁이가 다 닳아버린 책상도 모지랑이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슴속이 닳아 모지랑이가 되는 일이 있다. 정이 많은 우리 겨레는 모지랑이가 된 가슴을 애달픈 가락에 실어 노래로 표현했고 영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래와 영화들은 겨레붙이들의 한결같은 정서를 담고 있어 우리에게는 대개 살가운 느낌을 준다. 우리 옛날 영화에서는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바라보일 만한 정도로 뒤에 멀리 떨어져 따라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 꼭 맞는 순 우리말이 ‘바람만바람만’이라는 부사어이다. “그는 슬픔에 찬 그녀의 뒤를 바람만바람만 따르고 있었다.”처럼 말할 수 있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