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만은 날짜로 못박아 기려야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 이 글은 2016년 7월 19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8/2016071803050.html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내달 7일로 다가왔다. 24절기 중 하나인 입추는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절기 뉴스를 듣고서야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인지, 팥죽 먹는 동지인지 알게 된다. 그런데 한글날이 그리될 판이다. 기획재정부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한글날을 10월 9일이 아니라 '10월 둘째 월요일'처럼 특정 요일로 바꿔 쉬게 하겠다는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민의 휴식 보장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는가? 국가대표 문화 국경일인 한글날의 사회적 기능이 망가지고, 국민의 뇌리에 그저 '쉬는 날' 중의 하나로만 기억될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날은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해 그 반포 시기를 정확히 알게 된 뒤로 모든 국경일과 기념일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기려온 날이다. 그러니 한글날 대신 다른 날 쉬자는 건 성탄절이나 석가탄신일 대신 다른 날 쉬자는 이야기와 같다. 그 날짜를 묻어버리려는 용감함은 경제 논리에서 나온다. 참으로 얄궂다.

 

2012년에 한글날이 22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정해지기 전까지 경제부처와 경제단체에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반대한 이유가 있다. 노는 날이 많아져 경제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겨우 4년 만에 정반대로 생각이 바뀌었다. 한글날에 반드시 놀도록 휴일 제도를 고치잔다. 휴일을 늘려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경제 논리다. 수시로 널뛰는 경제 논리에 휘둘리다 보면 언젠가 바로 그 경제 문제 때문에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자는 주장이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문화 국경일 체면이 언제 어떻게 다시 구겨질지 모른다.


한글날은 우리 정신이 태어난 날로 기념해야 할 국경일이다. 우리 사회가 말과 글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반성하면서 더 좋은 말글 문화를 만들자고 뜻을 모으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가꾸는 사회적 반성 장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런 날이 또 있는가. 그런데 절기 중 하나인 입추처럼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쉬는 날'로만 기억된다면 사회적 반성 장치로서 한글날이 지니는 효과는 크게 떨어진다. 한글날이 제날짜를 잃고 10월 초 어딘가로 묻히면 한글문화 또한 우리 머릿속에서 점차 빛이 바랠 것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