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낱말의 의미는 문자가 아니라 체험에서 얻는다.

 

한자 문제에는 두 가지 논쟁점이 있다. 하나는, ‘한자말 뜻을 익히는 데에 한자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가?’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자로 표기하지 않으면 한자말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가?’하는 점이다. 두 문제는 ‘교육’과 ‘표기’라는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은 ‘낱말의 뜻을 사람이 어떻게 알아채는가?’라는 하나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새로운 낱말을 이해하는 단계에서 한자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교육의 문제이고, 낱말을 눈으로 지각하고 식별하는 단계에서 한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표기의 문제다. 하지만 한자말의 이해와 식별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역할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먼저, 교육의 문제를 짚어보자. 한자말의 의미는 대개 구성 한자의 뜻을 모아 끄집어낼 수 있다고들 생각한다.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분들도 그렇게 믿는다.


“가령, ‘문제의 난이도’라는 용어를 한글로 표기한 경우, 한자를 배운 사람의 경우에는 ‘난이도(難易度)’란 한자어를 구성하는 개별 글자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쉽고 어려움의 정도’라는 의미를 그 전체로서 암기하여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어기본법 위헌심판청구서, 4쪽,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한자에 붙어 있는 뜻을 압축하여 한자음으로 번역해 만든 낱말이 바로 한자말이므로, 한자를 알면 낱말 뜻 이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난이도’라는 말은 ‘어려울 난, 쉬울 이, 정도 도’라는 한자를 모아 만든 말이니, 그럴듯하다. 그런데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분이든 아닌 분이든 “어렵다, 쉽다, 이런 말의 뜻을 사람들은 어떻게 알게 되는가?”하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한자 뜻이야 그 훈인 토박이말에 기대어 알 수 있다지만, 이 토박이말의 뜻은 어떻게 알게 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교육부 권장 중고교용 기초한자 1,800자를 분석해보면 69%의 한자는 대표 훈이 ‘어렵다, 쉽다’와 같은 토박이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정도 도’의 뜻인 ‘정도’라는 말은 한자말인데, 이는 다시 ‘한도 정, 정도 도’라는 한자말로 돌아간다. 기초한자 1,800자의 31%는 대표 훈이 한자말이고, 대개는 설명해야 할 한자를 그 훈에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판단할 판, 재물 재, 법 법과 같은 글자이니, 훈이 있으나마나한 동어반복이다. 이런 한자는 훈에서 뜻을 끄집어낼 수 없다. 정도 도의 훈은 20개 가량이고, 그 대표 훈은 ‘법도’인데, ‘법도’든 ‘정도’든 뒤의 그 ‘도’는 자기 자신과 같은 말이니,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나다.”라고 답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말의 뜻은 어떻게 알아가는 것일까?


들온말과 섞임말을 제쳐두고 정리해보자면, 한국어 낱말은 (1) 토박이말, (2-1) 한자 뜻이 토박이말로 이루어진 한자말, (2-2) 한자 뜻이 한자말로 이루어진 한자말로 나눌 수 있다. (2-1)의 한자말 가운데에도 ‘우주, 자연, 사회’처럼 한자 뜻을 더한다하여 그 의미에 다다를 수 없는 한자말은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이 낱말들은 토박이말인 훈을 짝 맞추어 뜻을 파악할 실마리를 얻는다고 치자. 물론 이는 ‘하나=일=1’ 정도로 매우 단순한 짝 맞추기 활동이지 무어 그리 대단한 두뇌활동이랄 게 아니다. 여기서 토박이말의 뜻에 의존할 수 있는 (2-1)의 낱말 말고 (1)의 토박이말과 (2-2)처럼 뜻이 동어반복인 한자말의 의미 체득 원리를 알게 되면 한자말의 이해에 한자 지식이 핵심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낱말의 뜻은 내 머리 바깥의 세계와 내가 관계를 맺는 활동, 즉 체험 속에서 얻어간다. ‘어렵다, 쉽다’와 같은 토박이말, ‘행복’처럼 다행 행에 복 복으로 동어반복인 한자말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두어 살의 어린 아이가 숟가락을 드는 일, 신발을 신는 일부터 어렵고 쉬움을 체험하면서 아이에겐 그 상황과 낱말의 공통된 속성이 기억으로 남는다. 이 기억은 신발의 짝을 맞추는 일, 순서대로 수를 세는 일 따위 좀 더 고차적인 두뇌 활동에서 어렵고 쉬움을 겪으며 확장되고 구체화된다.


체험의 양과 깊이에 따라 개념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책’이라는 한자말은 어른에게는 지식을 얻는 읽을거리, 잠이 오지 않을 때 사용하는 수면제 대용품, 컵라면 끓일 때 뚜껑을 덮는 쓸모 있는 물건, 집안의 공간을 비좁게 하는 짐, 화날 때 집어 던져서 화풀이하는 수단 등 여러 가지 체험으로 하나의 종합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그가 성인이 되기까지 책을 읽고 만지며 겪은 여러 가지 체험에서 얻은 책의 다양한 속성을 머릿속에서 분류하여 저장하고, 다시 그 기억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하여 새로운 경험과 합쳐져 얻어내는 개념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책은 엄마가 읽어주는 놀라운 이야기, 잘못 디디면 넘어질 수도 있는 암초이지만 컵라면 뚜껑 덮개이거나 화풀이 수단은 아니다. 초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사회’라는 말을 얼마나 폭이 다르게 풀이할지 상상해보라.


무수한 체험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 대상과 낱말과 상황에서 다양한 속성을 받아들여 그 대상을 떠올렸을 때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행동과 생각을 끌어낸다. 이를 ‘행동 유도성’이라고 부르는데, 체험에서 얻은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은 문맥 속의 여러 낱말이 제시하는 다양한 행동 유도성을 종합하여 문장 이해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므로 ‘자동차’를 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 움직일 동, 수레 차’라고 한자를 알려줘도 자동차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幸福’이라고 적어주면서 ‘다행 행, 복 복’이라고 가르친다 하여 이 한자말의 뜻을 아는 게 아니다. 스스로 행복한 체험과 불행한 느낌을 겪으며 개념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지 않는다면 ‘행복’이라는 말은 빈껍데기와 다름없다.

 

생활, 독서와 대화, 토론, 견학, 영상물 시청 등이 모두 직간접의 체험을 쌓게 하여 개념의 이해와 확장을 가져오는 것이다. 전문적인 학술 용어 역시 이런 원리가 적용되지, 한자를 가르치고 한자로 표기한다 하여 자연적으로 낱말의 개념을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방정식을 풀고 인수분해를 해보지 않는 한 그 개념은 결코 명료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2-2)의 한자말뿐만 아니라 (2-1)의 한자말, 예를 들어 ‘부모, 가족, 학교’와 같은 말도 생활 속 체험에서 그 낱말의 구체성을 쌓아가고, 이를 나중에 문자와 결합시킬 뿐이다. 한자 뜻을 더하여 낱말 뜻을 알게 되는 것 같은 현상 속에 이런 원리가 담겨 있지만, 한자를 떠받드는 분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


한자의 단순한 뜻풀이는 사전의 풀이를 외우는 것과 효과가 다르지 않거니와,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자 풀이가 사전의 정의보다도 훨씬 허술하기 때문에 한자 지식으로부터 모든 한자말의 뜻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는 너무나 허황된 것이다.


다음으로, 표기의 문제를 보자. 한자는커녕 한글조차 모르는 만 4세가량의 어린이에게 “幼稚園 가기 前에 自動車 타고 病院에 가자.”고 한자로 적은 글과 “유치원 가기 전에 자동차 타고 병원에 가자.”고 한글로 적은 글을 읽어줄 경우에 아이는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아무 차이도 없다. 그러므로 그 아이가 한글을 익혀서 소리대로 적은 글을 눈으로 읽었을 때 의미 이해에 혼동이 일어날 수는 없다. 이는 중국의 시각장애인이 표의문자 원리가 아닌 표음문자 원리에 따라 고안한 중국어 점자를 이용하여 중국어 글을 읽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낱말의 뜻을 알고 있다면 발음기호로 적은 경우라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셈이니, 왜 한자말을 한글로 적는다하여 뜻을 모르겠는가? 낱말의 뜻은 문자에서 나오는 게 결코 아니다.

 

* 2016년 6월 한글학회 [한글새소식 526]에 실린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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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