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53] 김영명 공동대표

 

한 열흘 전에 킹 크랩 값이 폭락했다고 뉴스에서 떠들었다. 얼마에서 얼마로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내 관심도 끌었으니 말이다. 이 기회에 한 번 사먹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와 가락시장에 가끔 간다.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산다. 간 김에 킹 크랩 즉 왕게도 한 번 볼까 했다. 나는 그때 마침 발이 좀 아파서 차 안에 있고 아내만 갔다. 갔더니 웬 걸 왕게  값이 다시 올랐더란다. 그 값을 주고 사먹을 까닭은 별로 없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렇게 값이 올랐는데도 킹 크랩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섰더라는 것이다. 참, 광고의 효과가 엄청나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또한 바로 그 광고 효과 아니겠는가.


킹 크랩 가격 폭락 얘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잊고 있던 왕게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자기도 모르게 사먹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값이 폭락한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 대소동이 벌어졌겠지만, 다시 비싸졌는데도 아랑곳없이 안 찾던 사람들이 킹 크랩을 찾아 나선 것이다.


참, 사람들 조종하기 쉽다. 누가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물론 사람은 이성적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비이성적이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이 더 커 보이기도 한다.


영미 계통의 경험 과학에서는 인간의 합리성을 가정하고 그 행동을 설명, 예측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인간 행동에 잘 들어맞을까? 킹 크랩을 먹고 싶은 내 욕구와 내 주머니 사정과 사러 나서는 에너지와 쓸 데 없이 돈 많이 썼다고 타박하는 마누라의 바가지를 다 계산하여 그래도 사 먹는 것이 더 이익이니 그래 사 먹자--이것이 합리적 선택론에서 가정하는 인간 행동의 집행 과정이다.


과연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는가? 별로 아닌 것 같다. 와 킹 크랩이다! 싸졌대! 너도 나도 몰려간다. 와 비싸졌다! 그래도 왠지 손이 간다. 왜일까? 이를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들이 많을테지만, 그것까지 내가 건드리면 안 되겠지. 물론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민주주의의 큰 약점이 대중의 어리석은 휩쓸림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 역시 대중의 휩쓸림을 교묘히 잘 이용한다. 그러니 ‘우민 정치’라는 비판이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독재자는 대중을 더 우민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든 나타나지만, 한국 사람들의 집단 휩쓸림은 좀 독특한 면이 있다. 나는 그것을 좁은 국토에 비슷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독특한 조건 때문이라고 본다. 한 마디로 한국은 동질 사회 또는 단일 사회이고 동시에 밀집 사회이다. 요새 와서 다문화 사회니 뭐니 말들을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세상에서 민족이나 문화적으로 가장 동질적인 사회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의 현상으로 몰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이 국가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사고 공화국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런 한국 사회의 특성에 대한 글을 10년 전부터 써 왔지만 아무도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다. 미국 사람들이 만든 표준적인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또 한 번 썼다.


왕게는 결국 못 먹고 말았지만, 이런 글의 소재를 제공해 준 그 가격 폭락의 주인공에게 감사해야겠다. 그 아저씨는 그쪽 방면 전문가가 아니었는데, 너무 많이 수입하였다가 막 상하고 하려니까 대량 방출하여 가격 폭락을 불러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킹 크랩 먹을 기회를 주신 고마운 아저씨다. 손해 본 건 가슴 아프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일 하셨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