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34] 김영명 공동대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충고하기를 도덕이나 윤리를 생각하지 말고 군주와 국가의 권력 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이를 위해 때로는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지 말 것을 충고했다. 이런 그의 정치관은 이른바 현실주의 정치관으로, 이후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당시 유럽에서 종교의 지배를 벗어난 근대적 세속 정치관을 처음으로 펼쳤다는 점에서 이는 혁명적이었다. 서양에서는 말이다. 이런 서양 사람들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한국 사람들도 마키아벨리를 칭송한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동양에서는 마키아벨리가 탄생하기 1800년 전, 그리고 1700년 전에 이미 상앙과 한비자가 같은 정치관을 전개한 바 있다. 그들의 이론에 비해 마키아벨리의 이론이 특별히 더 상세하거나 탁월해 보이지도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두어 번 읽어보았지만, 그냥 그랬다.


중세 기독교 시절의 눈으로 보면 혁명적일지 몰라도 동양인의 눈으로 보면 하나도 혁명적일 게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서양인의 눈을 빌려 마키아벨리의 혁명성을 찬탄해마지 않는다. 바보들!


어쨌든, 마키아벨리든 한비자든, 현실주의 정치관은 쉽게 말해 값싼 동정에 이끌리지 말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국가 권력을 유지하라는 충고다. 일리가 있다. 조금 있는 게 아니라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무정한 정치관은 특히 나라의 존립이 어려운 난세에 어울리는 정치관이다. 나라와 군주의 권력이 바람 앞의 등불인데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무정하게 지켜낸 국가와 군주의 권력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것이 결국 백성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군주나 그 주위 세력의 안락을 위한 것일 뿐이다. 우리 백성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안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안락을 원한다.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나 마키아벨리의 피렌체보다 훨씬 더 안정된 대한민국이나 미 합중국이나 중화 인민 공화국에서 과연 상앙이나 마키아벨리처럼 무정한 정치를 펼쳐야 할까? 대답은 당연히 아니올시다이다.


정치는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여야 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시민을 사랑하는 정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 백성, 시민은 마땅히 저항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해 달라고. 구성원을 사랑하지 않는 지도자, 행정가, 정치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무자비한 권력으로 피렌체를 살려낸 군주가 피렌체 시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시민 역시 그 군주를 섬겨야 할 까닭이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아니 국민 이전에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국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은 모든 정치인이 입에 바르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앞에 두고 우리의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그런 사랑을 보였던가?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언제 어느 장면에서 보여주었던가?


마키아벨리의 비정한 정치를 “쿨”하다고, 멋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치는 멋있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다. 그냥 비정할 뿐이다. 진정으로 멋있는 정치는 사랑의 정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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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