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32] 김영명 공동대표

 

찬란한 오월이다. 금빛 햇빛이 조각조각 흩어져 상쾌한 얼굴을 스친다. 세모의 햇빛 네모의 햇빛 가녀린 햇빛 넉넉한 햇빛... 옥색 하늘에서 수줍은 구름이 이 땅의 너를 향해 웃음 짓는다. 이 눈부신 오월에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왜 남왕이 아니고 여왕일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런 표현들이 남왕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계절의 남왕도 만들어 줘. 양성 평등법에 걸리지 않게.


아침에는 서늘하나 낮에는 덥다. 텔레비전에서는 벌써 여름 날씨라고 호들갑이다. 그것이 호들갑을 안 떨 때는 없으니, 자신의 정체성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더운 오후에 웃옷을 벗고 제법 여름 차림을 하나, 여전히 햇볕은 오월의 따사로운 그것이다.


텅 빈 테니스 코트에 휑뎅그레하게 혼자 앉아 있어 보라. 오월의 제 맛을 다시 한 번 느낄 것이다. 굳이 테니스 코트가 아니어도 되고 온갖 다른 곳이어도 되지만,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는 않아야 한다.


그래서 오월에는 사람들이 뛰쳐나오나 보다. 5.16 쿠데타도 5.18 민주 항쟁도 오월에 일어났다. 날씨가 좋으니 뛰쳐나오기가 좋은 것이다. 1월에 일어난 민중 봉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독재자가 아무리 미워도 추워죽겠으니 다음에 보자. 7월 장마철도 좀 그렇다. 생쥐 꼴로 민주주의를 외치기는 좀 그렇잖아.


이런 말을 하다 보니 문득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나라가 지금 있는 온대 지방이 아니라 시베리아 벌판에 있었더라도 5.16 쿠데타, 5.18 민주 항쟁이 일어났을까? 추워 죽겠는데 어떻게 뛰쳐나가지?


참 오래 살다 보니 온갖 쓸데없는 생각들이 다 일어난다. 그런데 그 의문은 상당히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의문인 것 같다--라고 나는 강변하고 싶다.


역사는 오월에 많이 이루어지나 보다. 4월에 4.19가 일어났고 6월에 6.25와 6.29가 일어났으니, 오월만은 아니지만 역시 오월이 그 중심이다. 그런데 3.1 운동은 왜 그때 일어났을까? 상당히 추웠을텐데... 5.1 운동이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하지 않았을까? 날이 더 좋았을테니.


오월은 찬란하다. 좋은 일 궂은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찬란한 날에 찬란한 일만 일어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 않으니 어쩌랴. 찬란한 날이 있으면 후줄구레한 날도 있고 눈부신 날이 있으면 희뿌연 날도 있다. 후줄구레한 날이 있어 찬란한 날이 더 빛나고, 희뿌연 날이 있기에 눈부신 날이 더 값지다.


이 찬란한 오월.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오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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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