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쓴 글로 경향신문(2014년 1월 17일)에 실렸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172029575&code=990100)

 

한 달 전에 인터넷 유튜브라는 곳에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제목에다 ‘사물 존대의 논리’라는 부제를 붙였다. 사람들 반응이 제법 괜찮아 1만명이나 보았고 이른바 ‘화제의 동영상’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묘미는 급반전이었을 것이다. “신상품이십니다” “5만원이십니다” 등 손님을 극진히 모시겠노라고 쓰는 존댓말이 의도와는 달리 물건이나 돈을 높이고 있는데, 동영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어떤 슬픈 사정을 담고 있는지 비틀어서 보여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손님은 왕’이라는 구호 아래 친절 판매술이 도입되면서 백화점 판매원과 전화 영업사원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말투는 이제 편의점이든 다방이든, 옷가게든 어디서나 들려온다. 높임의 말꼬리 ‘시’를 붙이기만 하면 무조건 존댓말이 되는 줄 아는가보다. 학교의 말하기 교육이 얼마나 허술한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언어는 생물이다”라고 말하며 이런 현상을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도무지 생물 아닌 것이 무엇이랴? 그런 어법에서는 ‘자본’도 생물이고, ‘정치’도 생물이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모든 것을 다 생물이라고 멋지게 부를 뿐일진대, 왜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생물의 짓이라고 보는지 모르겠다.

 

사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좀 틀린다고 무어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느냐만, 존댓말은 사정이 좀 다르다. 우리말에 존댓말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존댓말이 버젓이 존재하는 바에야 이를 똑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존댓말은 단순히 언어 내부의 어문 규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말 사용법이기 때문이다. ‘시’를 마구 붙이는 이 말투만 해도 물건이나 돈에 존대하는 꼴이니 정작 손님은 존대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말투에 껄끄러움을 느껴 따따부따하고 고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손님 가운데 어떤 이는 그렇게 ‘시’를 붙여가며 말하지 않으면 건방지다고 화를 낸단다. 그러니 가게 주인은 무조건 ‘시’를 붙이라고 점원들에게 가르친다. 맞고 그르고가 없다.

 

내가 사물 존대의 잘못된 높임말을 문제 삼는 건 이 말버릇이 우리 사회의 존댓말과 반말에 관한 통념을 바꾸는 첫 단추가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과거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신분이나 지위, 나이 등의 차이를 나타내는 노릇을 했다. 어린 양반 도령이 버젓이 반말을 하면 늙은 종이 존대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극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신분제가 없어지면서 이런 모습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존경하고 말고를 떠나 나이 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으면 아직도 크나큰 시빗거리가 된다.

 

존대를 해야 하나 반말을 써도 될까 계산하느라 서로 마음 터놓고 대화하기 어려운 때를 다들 한두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상대가 한두 살이라도 어리다는 걸 알면 바로 반말이 나오는 세태다보니, 초면부터 서로의 진면목보다는 나이를 파악하는 데에 열심이다. 존댓말은 나이에 따른 차별의 장치로 악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하다. 하지만 사람의 존귀함이 어찌 나이가 많고 적음에 달렸겠는가.

 

이런 점에서 독일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어는 서구의 다른 언어에 비해 존대가 발전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한 사정이 있었는지, 1970년대부터 공적인 모든 관계에서는 존대를 사용하고 서로가 정말 친한 사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반말을 사용하는 사회 관행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와의 차이는 반말을 하는 친한 사이가 나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 반말을 한단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젊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진 존댓말 사라짐 현상과 비슷하다.

 

공적인 생활의 영역에서 모두가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시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표현이다. 손님이든 종업원이든 주인이든 부하직원이든 이런 점에서 차별을 두어선 안된다. 그러니 최근 직장에서 다시 살아나는 신분제적 반말, 즉 나이 어린 상사가 나이 많은 부하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작태를 그냥 놔둬서는 곤란하다. 사물 존대의 일그러진 세태를 고치고, 이를 넘어서 사람 존중의 말 문화를 뿌리내리자. 말의 겉치레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모든 시민이 서로 존중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관행이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