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럽 출신 유학생들 가운데에는 한국말 참 잘한다 싶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미국에서 유학한 우리나라 사람들 증언에 따르자면, 현지인처럼 영어를 구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던데, 그에 비하면 이 외국인들은 매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한다. 한국말이 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집 등 우리 생활문화가 말 배우기에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같은 어족에 속하는 말끼리는 조금 수월한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제 말이 아닌 남의 말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어는 옛날에는 그렇다고 알던 알타이 어족도 아니고, 어떤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말이라는 게 요즘 언어학계의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족과 매우 거리가 먼데, 아주 어릴 적부터 한국에 산 것도 아니요, 그리 오래 머무른 것도 아니면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해내는 이 외국인들 참으로 대단하다.

 

물론 한국말이 쉬워서 그러리라는 추측에 한국 사람들은 대개 동의하지 않을 터.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말이 어렵다고 느낀다. 한국어가 어렵다고 할 때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쓰는데, 이는 발음이나 표기의 문제를 가리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하는 이의 속뜻이나 태도와 관계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자연스레 몸에 익힌 우리조차 우리말의 특질보다 말에 녹아 있는 우리 생활문화의 특질이 간단하지 않아서 한국어가 어렵다고 투덜댄다. 호칭과 경어법이 그런 생활문화 가운데에서도 으뜸 암초다. 자칫 실수하면 후폭풍이 거세다.

 

호칭과 경어법은 말 상대를 제대로 대접해주느냐 아니냐 하는 인정의 문제라서 예민하다. 말을 거는 사람 처지에서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때 아주 답답하고, 듣는 처지에서는 기대했던 호칭이나 높임말이 아닐 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 듣는 사람이 혹시라도 불편하게 느낄까 봐 더 신경 쓰는 면도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호칭에서는 위아래 서열의 인정을 요구하고 요구받는다는 사정이 있어서 더더욱 조심스럽다. 즉, 호칭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 일부를 드러내 주는 것 말고도, 그 사람의 서열을 적절하게 표현해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서열의 잣대는 대개 나이와 지체(사회적 지위), 그리고 남성 우월적 남녀 구별이다.

 

사실, 대화 상대의 기분을 좌우하기는 경어법이 더 하지만, 어렵기는 호칭이 더 어렵다. 경어법이야 높임말과 예삿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호칭은 모인 사람들의 관계가 지닌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므로 매우 복잡하다. 사적 관계에서 ‘언니, 형’이라고 부르던 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불렀다가는 낭패를 면할 수 없다. 이런 복잡하고 섬세한 호칭 문화, 윗사람을 높여주는 경어법 문화를 우리의 전통 미덕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이 문화가 할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서 문제다. 나이 서열 기준이 매우 강하게 작동하는 동호회 같은 곳의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이소선합창단에서 테너로 활동하는데, 알토 쪽에 나보다 몇 달 늦게 태어난 대학 동기가 있다. 그는 내게 ‘오빠’라고 부르는 다른 알토 단원과 태어난 해가 같아서 서로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셋이 얼굴을 마주하면 좀 이상하다. 거꾸로, 나보다 한 해 일찍 태어났지만 학교에 들어간 해가 같아서 나랑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는 베이스 남자 단원이 있다. 그는 알토의 내 대학동기와는 2년 차이가 나지만 나랑 친구가 되는 바람에 둘도 처음 부르던 호칭을 버리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게 오빠라고 부르는 알토가 이 베이스와 말을 트기는 좀 마땅치 않다. 사연까지야 모르지만, 이 베이스 단원은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어떤 테너 단원과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른다. 그러니 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이 테너 동료를 어찌 불러야 할지 머뭇거리고, 그러다 말을 놓치기도 한다. 이렇듯 나이 서열이 호칭을 규정하고 경어법으로 이어져서 다시 인간관계를 좌우한다.

 

호칭과 경어법은 짝으로 가는 편이다. 호칭에서 위아래가 분명하다면 대개 존대말과 반말이 이어지고, 호칭에서 수평적이면 서로 존대하거나 서로 예삿말로 대화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호칭에서 위아래 서열 문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은 경어법의 변화까지 부를 일이리라. 즉, 호칭의 민주화는 우리 말 문화에서 갑을 서열을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를 어떤 식으로든 누그러뜨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목표로 삼아 ‘사장, 부장, 과장’과 같은 직함 호칭을 떼어내고 모두 이름 뒤에 ‘님’만 붙이는 호칭이 기업 세계에 퍼지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고 흥미롭다. 씨제이그룹, 에스케이텔레콤, 홈플러스, 넥슨, 네이버 등 많은 대기업에서 새로운 수평적 호칭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업 조직의 변화와 달리 공무원 조직에서는 아직 변화가 느껴지지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문화가 스며들고 피어날 것이다.

 

조직이 체계적인 곳과 온라인 공간에서는 호칭 문화가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조직의 구조가 느슨한 동호회나 가족 같은 곳에서는 아직 호칭으로 서열을 인정받으려는 전통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이런 서열 문화를 줄이려면 누구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 필요하다.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법, 별명과 같은 호를 지어 호만 부르는 방법, 이름 뒤에 ‘선생님’의 경상도식 줄임말인 ‘쌤’을 붙이는 방법 등 서로 수평적인 호칭을 써보는 의도적인 실험을 해보자. 여기에는 방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