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262] 성기지 운영위원

 

아침저녁으로 늙은 주인을 지하철역까지 실어다주는 낡은 자전거. 오늘 아침에 보니 안장이 서리에 덮여 온통 하얗다. ‘서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풀이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밤, 기온이 영하로 낮아질 때, 공중의 수증기가 땅위의 물건 겉에 닿아서 엉긴 흰 가루”(우리말 큰사전). 좀 장황하지만 서리를 무척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 ‘서리’는 이 밖에도 두 가지 뜻이 더 있는데, 그 하나가 “떼를 지어서 주인 모르게 훔쳐다 먹는 장난”이다. 예전에는 주로 마을 아이들이 서리를 저질렀고, 주인도 이에 대해 무척 관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리도 절도죄로 처벌 받게 되었으니, 국어사전에서도 ‘장난’을 ‘범죄’로 고쳐야 할 듯하다. ‘서리’는 또, “많이 모여 있는 무더기”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겨우내 군불을 지피기 위해 나무를 높게 쌓아놓은 것을 ‘나무 서리’라 하고, 읍내 장날에 약장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을 ‘사람 서리’라고 말할 수 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가운데,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란 시구가 있다. 이때의 ‘무서리’란 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이와 반대로, 늦가을에 아주 되게 내리는 서리를 ‘된서리’라 한다. 흔히 심한 타격을 입었을 때 “된서리를 맞는다.”라고 비유해서 쓰인다. 한 통신사가 작은 화재 한 건으로 수십 만 가입자의 일상을 멈춰버리게 했다. 해당 통신사는 된서리를 맞았지만, 이 일이 통신업계 전체가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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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