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년 11월 27일]에 실린 글

 

병원에서 진료비를 낼 때 "수납 창구로 가시라"는 안내를 받는다. 대개 그곳엔 '수납'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간호사들도 "가서 수납하시고 처방전 받아가세요"라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수납'이라는 낱말이 여럿 있다. 그중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은 두 개이다. 하나는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아 거두어들임'이라는 뜻의 '수납(收納)'이고, 다른 하나는 수납장, 수납공간 등에 쓰이는 '받아서 넣어 둠'이라는 뜻의 '수납(受納)'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납'이라는 말은 돈을 받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주체는 누구인가. 환자인가, 병원인가. 당연히 병원이다. 그러니 간호사가 "수납하세요"라고 환자나 보호자에게 안내한다면 그건 '돈 받아가세요'라는 뜻이 되고 만다. 정확하게 말하려면 "수납 창구에 가서 돈 내세요"라고 해야 한다.

 

병원에서 쓰는 '수납' 비슷하게 행동의 주체를 거꾸로 쓰는 대표적 낱말로 내부적으로 인사(人事)를 정한다는 '내정(內定)', 신청이나 신고를 받는다는 '접수(接受)', 거두어간다는 '수거(收去)' 등이 있다.

 

내정을 하는 주체는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람을 '내정자'라고 부르지 않고 내정을 받은 사람을 '내정자'라고 한다. 기업에서 취업 원서를 받을 때 원서를 접수하는 주체는 기업이고 취업 희망자는 원서를 제출하는 것인데, 흔히 취업 희망자가 원서를 접수하는 마감이 언제라는 식으로 말한다. 따로따로 나눈 재활용 물건을 거두어가는 주체는 환경미화원인데,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한테 '분리수거'를 잘하라고 안내한다. 최근 이런 문제점을 알아채고 '분리배출'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반인에게 '수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곳은 병원밖에 없다. 요즘 '무인 수납기'까지 등장했다. 이 말은 전적으로 '병원'이라는 의료 행위 제공자, 즉 공급자 중심의 표현으로 이용자들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요청과 안내를 담은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수납' 대신 '계산' '셈'이라는 말이 알맞고, 그런 곳은 '계산대'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 사용 방법이 잘못된 말도 바꾸어야 한다. "수납하시고"는 "돈 내시고" "계산하시고" 등으로, '수납 창구'는 '계산 창구' '계산대' 따위로 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6/2018112603255.html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