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글지 315호]에 실린 글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 교육에 한자 지식이 미치는 영향 분석*

 

이건범


〈벼리〉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에 한자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믿음 때문에 한자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연구에서는 한자어 교육에 구성 한자 지식을 이용하려는 전략이 타당한지 검토하고자 한자어와 한자 지식의 상관성을 분석한다.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 11,000개를 분석한 결과, ‘부모(父母)’처럼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가 32%, ‘단체(團體)’처럼 훈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가 16%, ‘비난(非難)’처럼 훈과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가 6%, ‘헌법(憲法)’처럼 한자의 음과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어가 46%였다.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는 구성 한자의 뜻을 모아 낱말 의미에 다가갈 수 있지만, 나머지 세 무리의 한자어는 낱말 이해에 한자 지식을 이용하기 어렵다. 한자어 교육에 한자 지식을 동원하는 전략이 어울리는 낱말은 32%에 불과하므로, 이 전략을 어휘 교육 전반으로 확대하여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한자어 교육에 필요한 한자 지식이란 글자 모양이 아니라 의미 요소인 ‘훈’이므로, 한자를 표기하거나 암기하게 할 이론적 근거는 더더욱 약하다.

 

주제어: 한자어, 한자어 교육, 훈(새김), 의미, 어휘 교육, 상관성, 의미 투명성.

 

* 이 논문은 2016년 9월 23일 ‘제22회 한글문화 토론회’에서 발표한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와 한자 어원의 상관성 분석」을 바탕으로 삼았다.

 

1. 연구의 목적과 방법


  우리 문자 생활과 초‧중등 교육에서 ‘한자’는 꽤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 주류 문자가 한자에서 한글로 옮아온 100여 년의 과도기가 길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한자의 표기 문제와 한자어 교육의 문제를 혼동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연구는 한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한자 혼용 등의 표기 요구가 사회 사정뿐만 아니라 논리에 비추어 따져 봐도 마땅치 않다는 견해에 서 있다. 한자 논란의 핵심이 ‘표기’가 아니라 ‘한자어 교육’에 한자를 사용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에 한자어의 의미를 익히는 데에 한자 지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한자 논란이 한자어를 이해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교육’의 측면과 글을 읽을 때 한자어는 한자로 적혀 있어야 식별할 수 있다는 ‘표기’의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살피고, 논란의 중점이 한자 혼용(또는 병기) 등의 표기보다는 교육에 놓인다는 점을 밝히겠다.
  둘째, 한자어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한자 지식이란 한자의 ‘글자 모양’이 아니라 한자의 음을 풀이한 뜻인 ‘훈(새김)’임을 밝히고, 낱말의 의미와 구성 한자의 훈 사이에 어떤 상관성이 있느냐에 따라 한자어의 유형을 나누겠다.
  셋째,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초등 3~6학년 국어, 사회, 과학,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11,023개 한자어의 뜻과 한자 훈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하여, ‘한자어를 이해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명제의 타당성을 검증하겠다.
  이 연구의 결론으로 고유어든 한자어든 낱말 이해의 원리는 보편적이며, 그 자원은 체험과 사용에서 비롯하고 더욱 풍부해짐을 주장하겠다.


2. 한자 논쟁의 성격


2.1. 논쟁에 섞인 과도적 성격과 개념 혼동


  우리 문자 생활에서 한자를 사용할 것인가, 사용한다면 어떤 용도로 얼마나 써야 하는가 따위 문제는 해방 뒤 70년 넘게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20년은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주요 문자가 한자에서 한글로 옮아가는 전환기였으므로, 대다수 국민이 서로 명쾌하게 합의하기 어려운 과도기 혼란과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1894년 11월에 고종이 칙령 1호를 발표하여 공문서에서 한글을 주로 쓰는 원칙을 세웠음에도 한자를 쓰던 오랜 관성 때문에 한글 사용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일제 강점과 해방, 박정희 정권의 한자 혼용과 한글 전용 널뛰기 등 역사는 지루한 밀고 당기기를 거쳐야 했다.
  1988년에 「한겨레신문」이 한글 전용으로 창간된 뒤 1990년대 후반에 일간신문의 한글 전용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비로소 우리 민족은 한국어를 한글로 적는 언문일치를 이룩했다. 1894년 고종황제가 공문서의 국문 위주 사용을 선포한 지 백 년이 지나서야 한글이 진정한 나라글자로 대접받게 된 셈이다. 하지만 세계화와 개방, 외환위기 때문에 2000년대에 들어서 영어 능력이 필요 이상으로 대접받고 상대적으로 국어 정체성이 약해지자 한자를 혼용하거나 병기하자는 요구가 다시 일어났다.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2012년에는 공문서의 한글 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을 상대로 위헌심판을 청구하는가 하면 2014년에는 교육부에서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침을 검토하겠노라고 발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렇듯 한자를 둘러싼 대립은 우리의 주류 문자가 바뀌던 전환기 120여 년 동안 묵은 것이라 전통과 현대, 사대와 자주, 소수 특권 지배와 다수 민주 정치 등 우리 근현대의 사회적 갈등이 이 논쟁 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런데 갈등하던 시간의 길이와 갈등 구조의 복잡함보다 더 강하게 양쪽의 소통과 공감을 방해하는 사정이 있다. 바로 ‘한자 표기’와 ‘한자 교육’을 혼동하는 경향이 양쪽에서 다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글 전용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한자를 가르치지 말자는 말이냐?”고 ‘교육’ 문제로 반박하는 게 대표적이다.
  한자 문제에는 두 가지 논쟁점이 있다. 하나는, ‘한자어 뜻을 익히는 데에 한자 지식이 꼭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자로 표기하지 않으면 한자어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가?’ 하는 점이다. 두 문제는 ‘낱말의 뜻을 사람이 어떻게 알아채는가’라는 하나의 물음에서 나오지만, 엄밀히 보자면 ‘교육’과 ‘표기’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 새로운 낱말을 이해하는 국면에서 한자 지식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은 교육의 문제이고, 문자로 적은 낱말을 눈으로 지각하고 식별하는 국면에서 한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표기의 문제이다. 한자 중시론1)에 선 사람이나 한글 전용을 지지하는 사람들 모두 논쟁에서 이 두 문제를 자주 뒤섞어 말한다.


 

1) 문자 표기에서 한자를 혼용하거나 병기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 문자 습득 초기인 초등학교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등 구체적인 안에서는 편차가 있음에도 현재 공교육에서 펴는 것보다 한자 사용과 교육을 강조하는 의견을 아울러서 ‘한자 중시론’이라고 부르겠다.


  그런데 두 가지 중에서 한자 혼용이나 한자 병기의 확대 등 한자 ‘표기’ 주장은 학문적 근거 이전에 국민의 역사적 경험과 상식적 판단에 비추어 더 이상 지지를 얻기 힘들게 되었다. 1990년대 일간신문의 한글 전용에 뒤이어 통신망에서 국민들이 한글로 글을 쓰고 소통하면서부터 한글 전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사회적이고 공개적인 글쓰기의 주체가 소수 지식인에서 다수 국민으로 바뀐 사정이 우리 문자 환경을 한글 전용으로 굳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리고 공문서의 한글 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 등의 위헌심판 청구 사건에 2016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내린 기각 결정은 이 흐름이 법률과 헌법에 비추어서도 정당한 상식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렇듯 ‘표기’의 문제가 한자 논란의 핵심이 아님에도 한자를 둘러싼 갈등이 자주 한자 표기와 한글 표기 사이의 충돌처럼 알려지는 데에는 다른 사정이 있다. 한자어 이해에 한자 지식이 필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한자 교육 강화를 목적으로 한자 표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2.2. 한자, 표기보다는 한자어 교육의 문제


  우리는 라디오나 전화, 강연에서 한자어를 무수히 포함한 문장을 입말로 주고받지만, 아무런 혼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그대로 한글로 적었을 때 이를 읽고 이해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문자란 말을 표상하는 기호일 뿐이고, 사물이나 사태의 의미는 문자 이전에 말에 담기는 것이기에, 이런 생활 경험들이 학문적으로도 충분히 뒷받침된다. 한글조차 모르는 어린아이도 ‘부모, 유치원, 자동차’와 같은 한자어의 뜻을 말로 들어 이해한다면 한글을 배운 뒤 한글로 적어놓은 ‘부모, 유치원, 자동차’와 같은 낱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이는 낱말의 뜻이 ‘부모, 유치원, 자동차’와 같은 한글 표기나 ‘父母, 幼稚園, 自動車’와 같은 한자 표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한자라는 글자가 의미를 지닌 게 아니라 이미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한자라는 문자로 표기한 것일 뿐이다.
  인지과학자 퍼페티(Perfetti. C. A.)는 읽기의 인지 과정이 글자로부터 말의 음운 정보와 형태소 정보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는 읽기의 보편적 음운 원리(universal principle of phonology in reading)를 제안했다.2)


2) 배문정(2016:20)에서 재인용.

배문정(2016:21)에 따르자면, 퍼페티는 중국인이 한자를 읽을 때, 실험 과제가 단어의 음운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지 않을 경우에도 말의 음운 정보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하는 다양한 실험들을 수행하였는데, 중국인들이 한자를 읽고 바로 의미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 글자가 표상하고 있는 말소리(음운)에 접근하여 이 음운 정보의 도움을 받아 의미를 꺼내온다는 결과를 얻었다.
  읽기 과정이 말의 음운을 매개로 한다는 인지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자면, 우리가 말로 주고받는 것을 거의 그대로 적는 한글 전용 문장을 읽고 뜻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난독증 환자가 아닌 한,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말은 이해하되 그것을 적은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란 없다. 실제로, 한자만 사용하는 중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표음문자 원리에 바탕을 둔 중국어 점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자어를 한자로 적어야만 뜻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의 논리적 오류를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같다. 이른바 ‘표의문자’라는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표음 원리의 점자를 사용해 글을 읽는다는 건 한자어를 반드시 한자로 적어야만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반증한다. 이는 한자어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표음문자인 한글로 표기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게 논리적으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심지어 동형어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인 ‘인사’와 누구를 만나서 나누는 예절인 ‘인사’는 한글이 같은 동형어일 뿐만 아니라 한자마저 ‘人事’라고 같게 쓰지만 누구나 말과 글에서 이 두 낱말을 맥락으로 충분히 구별한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문장에 쓰인 낱말의 뜻을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즉, 말로 들어서 문장 속의 한자어를 다 이해한다면 그 말을 한글로 적어놓아도 다 이해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고빈도 한자어는 모두 그 뜻을 알고 있으므로 한자어일지라도 한자 표기가 필요 없다. 반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저빈도 한자어는 대개 전문적인 용어이므로 그 분야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한자로 표기하더라도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3), 포괄수가제(包括收價制)4), 용암법(溶暗法)5)과 같은 전문용어를 한자로 적어놓는다 하여 일반인이 그 한자를 읽고 정확한 뜻에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낱말의 뜻을 모른다면 한자로 표기하든 한글로 표기하든 매우 모호한 수준에서 뜻을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꾸로, 앞에 든 세 전문용어도 설명을 읽고 나면 그 뜻을 어느 정도 알게 되므로 한글로 표기해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다. 뜻을 모르는 낱말은 ‘교육’의 영역에서 해결할 일이지 ‘표기’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3) 심장에 마비가 왔을 때 심실과 심방의 잔떨림을 억제하여 규칙적인 심장 박동의 리듬을 찾도록 심장에 강한 전류를 순간적으로 보내는 기기. 한글문화연대에서 요구하여 ‘자동심장충격기’라고 바꾸어 부르기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2016년 5월)했다.
4)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종류나 양과 관계없이 어떤 질병의 진료를 위해 입원했었는가에 따라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제도. ‘의료비 정찰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5) 도움이나 촉진을 점차 줄여 나가서(fade out)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행동 중재 방법의 하나. 특수교육 분야에서 심리치료 기법으로 활용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자 중시론도 모든 한자어를 반드시 한자로 표기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자신들의 핵심 논리를 흐리면서, 한자를 가르쳐 한자어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강조점을 옮긴다.6) ‘교육’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래 인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자어의 뜻을 파악하는 데에 한자 지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할 때, 그 한자 지식이란 결국 한자의 ‘모양’이 아니라 한자음에 붙어 있는 뜻풀이인 ‘훈’이라고 보는 것이다.


6) 이에 관해서는 2016년 5월 12일 열린 ‘2012헌마854 국어기본법 등 위헌심판 청구 사건’의 공개 변론 동영상을 참고할 것. 헌법재판소 누리집 http://www.ccourt.go.kr/cckhome/kor/info/selectDiscussionVideoList.do.

 “가령, ‘문제의 난이도’라는 용어를 한글로 표기한 경우, 한자를 배운 사람의 경우에는 ‘난이도(難易度)’란 한자어를 구성하는 개별 글자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쉽고 어려움의 정도’라는 의미를 그 전체로서 암기하여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지연 외(2012:4).


  ‘개별 글자의 의미’인 훈이 한자어 이해에 관건인 한자 지식임을 한자 중시론자들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낱말 식별을 위해 반드시 한자 ‘표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표기와 교육의 두 요소가 함께 다가올 때도 있다. 혼자 글을 읽는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한자어가 나왔을 경우다. 특히 동형어가 많을 경우에 대비해 한자 표기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주장할 수 있다. 글쓴이 처지에서 이런 걱정이 크게 인다면 모든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선택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하지만 현실이 그토록 극단적이지는 않으므로 글쓴이 스스로 판단하여 신조어나 전문용어 등 일반적인 독자가 낯설게 느낄만한 한자어에 한해 한자를 병기하는 방법이 합리적이다. 이게 바로 국어기본법에서 허용한 예외적 한자 병기의 원칙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자 중시론자들은 왜 한자 혼용이나 한자 병기 확대와 같은 표기 문제를 강조할까? 그것은 한글 전용이 읽기에 불편함을 주기보다는 한자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한자를 잊게 만드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한자를 재교육하는 수단으로서 한자 표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한자 지식을 보전하여 다른 한자어를 습득할 때 그 지식을 활용해야만 한다는 교육 방법을 전제로 삼기에 나오는 요구다. 결국은 한자어 교육의 문제이다. 그런데 과연 한자 중시론의 주장대로 한자어의 뜻은 ‘개별 글자의 의미’를 더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이 문제를 짚어 보겠다.


3. 한자어 이해와 한자 지식의 상관성 규명 방법


3.1. 한자의 훈이 미치는 영향의 편차


  한자어는 한자에 바탕을 둔 말이므로 한자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는 그동안 우리 언어생활에서 크게 의심받지 않았다. 어떤 낱말이 개념이나 현상을 총체적으로 담아내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은 한자어건 고유어건 마찬가지이기에 굳이 한자어의 어원적 한계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의 개념이 담아내는 다양한 관계, 하나의 현상에 연결된 다양한 사정, 하나의 물체에 담긴 다양한 성질은 낱말에 아주 부분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 낱말이 대표하는 모든 관계와 사정과 성질은 우리의 언어와 사고 속에서 총체적이고 구체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한자어의 의미가 구성 한자의 훈으로 투명하게 환원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낱말을 버리거나 의미를 부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이는 고유어의 어원을 모르더라도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 지장이 없는 것과 사정이 같다. 오늘날 너무 높게 칭송되는 한자의 효능이란 결국 ‘사회적 약속’인 언어생활의 일반 속성이 언중으로 하여금 한자어의 어원을 의심하지 않고 쓰게 강제한 효과인 셈이다. 한자를 알면 한자어의 뜻을 알 수 있다는 믿음에는 이런 역전된 사정이 깔려 있다.
  흔히 한자어의 의미는 구성 한자의 훈을 모아 끄집어낼 수 있다고들 여긴다. 우리 토박이말을 중국 한자와 비슷한 음으로 압축 번역한 것이 한자음이고, 이 한자음을 모아 만든 낱말이 바로 한자어이므로, 한자를 알면 낱말 뜻 이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8) 앞 인용에서 나온 ‘난이도’라는 말은 ‘어려울 난, 쉬울 이, 정도 도’라는 한자를 모아 만든 말이니, 이 주장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한자어 이해에서 한자가 주는 도움이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8) 이건범(2016:81~100) 참조. 영어에서 ‘sky’라고 표현하는 대상이 우리 토박이말에서는 ‘하늘’이고 중국어에서는 ‘티앤 tiān’이다. 중국어에서는 이 ‘티앤’을 ‘天’이라고 적고 [티앤]이라고만 읽는데, 한국 한자에서는 ‘天’이라 적고 ‘하늘 천’이라고 익힌다. ‘하늘’을 [티앤]과 비슷한 [천]이라는 음으로 압축 번역한 것이므로 그 훈인 ‘하늘’로 ‘천’의 뜻을 설명해준다. 이 압축 번역 효과가 한자는 뜻을 가진 글자이고 한글은 뜻을 표현할 수 없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한자도 중국어에서는 표음 기능을 지니는 문자 본연의 역할을 하며, 한글도 자모 글자만으로는 뜻을 표현하지 않지만 낱말을 표기하면 당연히 뜻을 표현한다.
 
  앞서 예로 든 ‘난이도’라는 말은 ‘어려울 난, 쉬울 이, 정도 도’라는 세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뜻은 ‘어렵고 쉬움의 정도’이다. 한자음에 맞춰 이루어진 풀이를 보면 한자어 이해에 개별 한자의 의미가 연결된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마지막 글자인 ‘정도 도’에 주목해보자. 이 글자의 훈인 ‘정도(程度)’라는 말은 한자어인바, ‘정도’라는 낱말을 구성하는 개별 한자 ‘한도(限度) 정, 정도(程度) 도’의 의미를 더하면 그 뜻이 ‘한도와 정도’라는 한자어로 되돌아간다. 무한정 일어나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던 말인 ‘정도’라는 한자어의 뜻을 우리는 한자 지식으로 도무지 해명할 수 없다.
  이렇듯 한자의 훈이 설명해주어야 할 한자의 음을 포함하고 있어 동어반복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한자 훈을 더하여 그 낱말을 설명할 수 없다. 기초한자 1,800자의 30% 남짓은 대표 훈이 한자어이고, 대개는 설명해야 할 한자음을 그 훈에 담고 있다.9) 예를 들어 판단할 판, 재물 재, 법 법과 같은 글자이니, 훈이 있으나 마나 한 동어반복일 뿐이다. 이런 한자는 훈에서 뜻을 끄집어낼 수 없다. 국어사전에 실린 풀이를 보는 게 뜻을 분명히 파악하는 길이다. ‘정도 도’의 훈은 20개가량이고, 그 대표 훈은 ‘법도’인데, ‘법도’든 ‘정도’든 뒤의 그 ‘도’는 자기 자신과 같은 말 ‘도’이니,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나다.”라고 답하는 꼴이다.


9)교육부에서 한문 교육용으로 권장한 기초한자 목록에는 훈이 붙어 있지 않다. 따라서 표준화된 한자 훈은 없는 셈이다. 기초한자 1,800자의 훈을 정리한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략 28~32%의 한자는 훈이 한자어이다.
 
  앞서 한자어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한자 지식은 바로 ‘한자의 훈’이라는 점을 밝혔는데, 한자의 훈이 한자어인 경우에 대부분은 동어반복에 빠진다는 한계를 먼저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훈이 한자어인 한자 말고 훈이 고유어로 되어 있는 ‘어려울 난, 쉬울 이’와 같은 한자가 들어간 말은 한자 지식이 도움되지 않겠냐고 기대할 수 있다. 중고교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가운데 70% 남짓의 한자는 대표 훈이 ‘아비, 어미, 어렵다, 쉽다’와 같은 고유어이다. 이 경우에, ‘부모’는 ‘아비 어미’라 풀이되므로 말뜻과 한자 어원 사이에 상관성이 높다. ‘난이도’에서 ‘난이’ 또한 ‘어렵고 쉬움’이라고 풀이할 수 있으므로 ‘부모’처럼 한자어 말뜻과 개별 한자의 의미 사이에 상관성이 매우 높다. 한자 중시론에서는 주로 이런 한자어를 예로 든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훈이 고유어임에도 ‘사회(社會)’와 ‘회사(會社)’는 ‘모임+모임’ 정도의 뜻이므로 구성 한자의 훈과 낱말 의미 사이에 상관성이 그리 높지 않으며, ‘우주(宇宙)’는 ‘집+집’이고 ‘비난(非難)’은 ‘어렵지 않음’인지라 상관성이 전혀 없다. 한자의 훈이 고유어인 경우에도 이렇게 한자어 낱말의 뜻과 잘 이어지지 않는 말이 한자어에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므로 한자 조합의 경우에 따라 구성 한자의 훈과 한자어 의미 사이의 상관성이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3.2. 상관성에 따른 한자어의 네 가지 갈래 구분


  한자어 낱말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글자 모양이 아니라 구성 한자의 훈이므로 그 훈의 속성에 따라 한자어를 나눌 수 있다. 먼저, 훈이 고유어인 한자와 훈이 한자어인 한자 가운데 어떤 한자로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크게 한자어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한자 훈이 고유어인 경우에 훈을 합성한 결과가 한자어 뜻과 얼마나 상관성이 높은가에 따라 거의 직역에 해당하는 한자어와 의역에 해당하는 한자어, 아무 상관이 없는 한자어로 나눌 수 있다. 두 가지 사건이나 사물 사이에 서로 관계되는 성질이나 특성을 상관성이라고 부르는데, 구성 한자의 훈과 한자어 뜻 사이의 상관성이 어떠하냐에 따라 한자어는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한자 훈의 구성에 따른 한자어 구분

 나눔

 구성 한자의 훈

 한자어 성격

 한자어 사례

1무리

 모두 고유어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
낱말을 이루는 한자의 훈이 모두 고유어이고, 이 고유어 훈을 엮으면 한자어의 정체가 대체로 보인다. 직역에 가깝다.

 부모(아비 부,
 어미 모)
애국(사랑 애,
 나라 국)

2무리

 모두 고유어

 <훈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
낱말을 이루는 한자의 훈이 모두 고유어이지만, 훈을 엮어도 한자어의 정체가 바로 보이진 않는다. 한자 뜻이 주는 실마리를 이용해 의역해야 한다.

 사회(모일 사,
 모일 회)
단체(둥글 단,
 몸 체)

3무리

 모두 한자어

 또는 일부
 한자어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어>

낱말을 이루는 한자의 전부 또는 일부가 훈이 한자어라 한자어와 구성 한자의 뜻 사이에서 동어반복이 일어난다.

 재물(재물 재,
 만물 물)
헌법(법 헌,
 법 법)

4무리

 관계 없음

 <훈과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

낱말을 이루는 한자의 훈이 고유어든 한자어든 관계없이 훈을 얽어도 낱말 뜻과 거리가 너무 멀다.

 비난(아닐 비,
 어려울 난)
우주(집 우,
 집 주)


  4무리에는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가 포함된 한자어도 일부 들어간다. 예를 들어 ‘여건(與件)’처럼 ‘더불 여/물건 건’으로 두 계열의 한자가 섞여 있어서 3무리에 넣어야 하지만, 둘을 합성한 결과가 낱말의 뜻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 경우에는 3무리에 넣지 않고 4무리로 분류한다.


3.3. 앞선 연구와 논쟁점


  박영의(1999), 김왕규(2004), 노명희(2008) 등은 이 연구의 접근 방법과 비슷하게 ‘한자어와 자훈의 상관성’ 또는 ‘한자어의 의미 투명도’를 연구하였다. 노명희(2008)는 ‘한자어의 구성성분과 의미 투명도’에서 바우어(Bauer)의 투명성(transparency) 개념10) 을 끌어와 한자어의 성분과 의미 사이의 관련성을 투명성과 합성성으로 짝지어 설명하고자 하였다.


10) airmail과 blackmail의 경우는 둘 다 구성 형태로 분석 가능하다. 그러나 airmail(항공우편)의 의미는 구성 형태의 정보로부터 예측 가능하지만 blackmail(공갈, 갈취)의 의미는 예측 가능하지 않으므로, 전자는 투명하고 후자는 불투명하다(Bauer, L., 1983, English Word-form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노명희(2008:92)에서 재인용.

“한자어의 두 성분 A, B가 의미 투명도에 따라 전체 한자어의 의미에 반영되는 양상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 투명한 경우, (2) 반투명한 경우, (3) 불투명한 경우. (1)은 [A+B]→[A+B] 유형으로 A와 B의 원래 의미가 그대로 유지되며 의미 합성성의 원리에 부합한다. 여기에는 ‘이용(利用), 표현(表現), 계산(計算)’ 등의 예가 있다. (2)에는 <1> B가 투명하게 인식되는 [A]+[B]→[A'+B] 유형의 ‘모양(模樣), 조사(調査), 사용(使用)’, <2> A가 투명하게 인식되는 [A]+[B]→[A+B'] 유형의 ‘내용(內容), 문제(問題), 의견(意見)’, <3>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는 [A]+[B]→[A+B+α] 유형의 ‘친구(親舊), 사진(寫眞)’ 등이 있다. (3)은 [A+B]→[C]처럼 A나 B의 어느 쪽과도 관련짓기 어려운 제3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로 ‘공부(工夫), 문화(文化), 환경(環境)’ 등의 예가 있다.”(노명희 2008:89)

 

  본 연구에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에 견준다면, 1무리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를 노명희(2008)에서는 ‘투명한 경우’로, 2무리 ‘훈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를 ‘반투명한 경우’로, 4무리 ‘훈과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를 ‘불투명한 경우’로 잡은 것이다. 노명희(2008)의 이 의미 투명도 연구는 한자어 내부의 구성 요소와 형태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국어학적 탐색에 집중된 탓에 ‘어원이 동어반복인 한자어’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즉, 이미 낱말 뜻을 체득한 성인의 눈높이에서 어휘 사용 실제를 분석한 것이지, 한자어 교육에 이런 동어반복인 한자 훈 지식을 이용할 수 있는지가 원래 그의 연구 주제는 아니었다.
  노명희(2008)에 앞서 박영의(1999)는 6차 교육과정의 초등 4~6학년 읽기 교과서에 나오는 2,200여 개 한자어의 의미와 한자 ‘훈’의 상관성을 분석하였다. 그 뒤 한자 중시론의 관점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민현식‧김왕규 외(2003)가 7차 교육과정의 초등 교과서 전체를 대상으로 삼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어 및 한자 분석 연구」에서, 그리고 이 연구의 자료를 활용하여 김왕규(2005)가 「한자 자훈(字訓) 이해와 한자어 의미 이해의 상관도」 연구에서 ‘의미 투명도’라는 잣대를 사용하여 한자어를 분석하였다. 하지만 민현식‧김왕규 외(2003)와 김왕규(2005)는 의미 투명도를 언급하고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고빈도 상위 300개 한자어의 투명도를 판단하는 실례를 보였을 뿐이지 전체 분포가 어떤지는 분석하지 못했다. 이는 노명희(2008)에서도 마찬가지다. 분석 자료의 수량 면에서 신뢰도가 높은 것은 박영의(1999)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한자어의 의미와 구성 한자의 훈 사이에 어떤 상관성이 있느냐에 따라 앞의 <표 1>처럼 네 가지로 한자어를 분류하는 기준은 다음의 세 가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첫째, 이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무 자르듯이 낱말을 분류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엄격하게 적용한다 하더라도 분류 결과를 보는 사람들의 어휘력이나 국어 감수성의 차이 때문에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노명희(2008)도 국어 화자들이 개별 한자에 대해 얼마나 합치된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한자어에 대한 지식 정도에 따라 투명도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힌다. 이를 입증하듯이 김왕규(2005)가 투명하다고 판단한 낱말에 대해 노명희(2008)는 반투명하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관성이야말로 어휘의미 이해에서 두드러지는 속성이므로 오히려 이 주관성이 우리의 언어 현실을 잘 반영한다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둘째, 구성 한자의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어를 별도 갈래로 잡는 문제다. 예를 들어 ‘난이도’와 같은 한자어에서 앞의 ‘난이’는 훈이 ‘어려울/쉬울’로 모두 고유어이고 직역에 가까우므로 1무리로 분류하겠지만, 마지막 글자인 ‘정도 도’는 훈이 한자어이므로 이런 한자가 한 글자라도 들어 있는 ‘난이도’와 같은 낱말은 3무리로 분류한다. 이 역시 너무 극단적이지 않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정도’와 같은 말은 한자어긴 하더라도 웬만하면 아는 낱말인데, 이것이 동어반복을 일으키는 한자라고 3무리에 넣는다면 생트집 아니냐는 비판일 것이다. 하지만 ‘한자어의 뜻을 알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한자 중시론의 명제에 논리적으로 충실하기 위해서는 한자 공부를 통해 이해한 한자어 외에 다른 경로로 얻은 어휘 지식을 인정해선 안 된다. 그렇게 인정하기 시작하면 한자를 몰라도 한자어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므로, 오히려 한자 중시론의 근본 전제를 허물게 된다.
  셋째, 대표 훈을 하나로 제한하여 잡는 문제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대개 하나의 음을 가지고 있지만, 훈은 최소 5개 이상 20여 개나 된다. 흔히 한자어 뜻풀이에서 어떤 훈을 취할 것인가는 어떤 다른 한자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다수의 훈을 적용할 경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 모든 훈을 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개는 대표 훈만 외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런 단순한 현실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이전 연구들을 살펴보자면, 김왕규(2005)와 박영의(1999)는 대표 훈을 하나로 정하여 한자어의 의미 투명도를 판단한 반면에 노명희(2008)는 그 한자가 국어 단어에서 일관된 의미와 용법을 보인다면 여러 훈을 복수로 인정하여 투명도를 판단하였다. 예를 들어 상자, 탁자, 의자, 모자, 판자 등에서 ‘~자(子)’의 대표 훈이 ‘아들’이므로 김왕규(2005)의 기준에서는 이 낱말들이 불투명어로 처리되겠지만, 노명희(2008)는 ‘자’가 일관되게 물건의 이름을 뜻하는 접사적 용법을 보이므로 의미의 공통성이 추출된다고 여겨 투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박영의(1999), 김왕규(2005)처럼 하나의 한자에는 하나의 대표 훈만 인정하였다. 물론 현실 언어생활에서 언중에게 어떤 한자어가 투명하게 느껴지느냐 아니냐는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노명희(2008)의 연구 주제였으므로 노명희(2008)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한자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자 지식을 동원하려 할 때도 이런 방법론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한자의 ‘다의성’이 매우 큰 걸림돌이 될 뿐이다. 한자의 다의성이 지닌 문제점에 관해서는 노명희(2008)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양’의 ‘모(模)’가 불투명하게 인식되는 것은 ‘모’의 다의성에서 오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모’가 국어 단어에서 ‘본보기, 모방, 틀, 모호하다.’ 등 여러 의미로 쓰이면서 의미적 투명성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Bauer(2001:53~54)에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형태에 하나의 의미가 대응되는 단일기능성(monofuctionality)을 지닌 형태소가 더 투명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자 형태소는 단어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여 고유어 단어가 가지는 투명도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흔히 한자어가 조어력이 뛰어난 이유로 의미의 융통성이나 통사적 기능의 다양성을 든다(심재기 1987/2005). 그렇다면 이는 역으로 의미적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다. 하나의 한자가 여러 의미로 쓰이고 다양한 통사적 기능을 가지게 되면 개별 단위로의 인식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노명희 2008:105)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경도(經度), 경제(經濟),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모두 같은 ‘글 경(經)’을 사용하지만, 뜻은 ‘지나다, 다스리다, 글’ 등으로 서로 다르다. 한자의 이런 다의성이야말로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해도 뜻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고, 한자어를 한자만으로 가르쳐서는 잘못된 이해로 이끌 위험스러운 요인인 것이다.
이 세 가지 논쟁거리는 한자를 활용하여 한자어를 학습하는 데에 어린 학생들이 누구든 겪게 될 문제점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 문제점을 연구 방법론에 그대로 반영한 것뿐이다.


4. 한자어와 훈의 상관성 분석 실제


4.1 분류 대상 한자어 선정 기준


  이 연구에서는 한자어 의미와 구성 한자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하기 위해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등 3~6학년 국어, 사회, 과학,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한자어를 뽑았다.11) 4개 학년 네 과목 교과서에서 뽑은 한자어는 모두 25,000여 개였고, 각 과목 안에서 중복된 낱말을 하나로 합치니 11,023개가 남았다. 국어, 사회, 과학, 도덕 교과서 사이에 중복되는 낱말까지 하나로 추리면 전체 낱말 수는 더 줄어들지만, 하나로 추린 낱말을 어느 과목에 넣어두느냐 하는 분류의 어려움이 발생하므로 11,000여 개의 낱말을 기준으로 목록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 낱말에 해당하는 한자와 그 훈을 찾아 붙이고 사전의 뜻풀이를 옮겨 넣었다. 이렇게 한자어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적용하였다.


11) 이 작업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초등 교사 10여 명이 한글문화연대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수행하였다. 수학 교과서에서도 한자어를 뽑았으나, 수학자 허민의 「한자말 수학용어의 문제점과 극복방안」(2016) 연구가 있어서 이 연구에서는 제외하였다.
 
  첫째, 사람 이름과 땅 이름, 도시 이름, 나라 이름 등과 같은 고유명사는 대상에서 뺐다. 이런 고유명사는 이름을 붙인 이의 자의성이 너무 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자어와 구성 한자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하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이건범’이라는 인명에서 ‘건범(建範)’은 ‘세울 건/법 범’인바, 사람 이건범이 법을 세우는 일과 무슨 상관성이 있는지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국’은 ‘꽃부리 영/나라 국’인데, 이는 ‘잉글랜드’의 첫소리와 중국어 발음이 같은 ‘英’으로 음을 빌어 지은 이름이니 그 한자어와 구성 한자 사이의 의미 상관성은 전혀 없다. 이렇게 고유명사를 뺌으로써 상관성 분석의 객관성을 높였다.
  둘째, ‘게임-기’, ‘검은-색’처럼 고유어나 외래어 앞뒤에 한자가 접사로 한 글자 들어간 섞임말은 분류 대상에서 뺐다.
  셋째, ‘가치’와 ‘가치성’처럼 접미사(-성, -부, -화, -도 따위)가 붙어 다른 낱말로 뽑힌 경우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로 올린 말이라면 따로 잡아 분류하였다. 다만 관형사나 형용사를 만드는 어미인 ‘-적’, 부사형 어미인 ‘-상’은 중복되는 앞말이 있으면 앞말과 하나로 쳤다. ‘문화’와 ‘문화적’이 있다면 ‘문화’만 대상어로 삼았다는 뜻이다.
  넷째, 한자의 훈은 교육부 권장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의 경우 한자급수시험 주관 단체인 ‘한국어문회’에서 ‘사이버 서당’(http://www.cyberseodang.or.kr/)을 통해 제시한 대표 훈을 따랐다. 이곳은 한자 중시론의 선두에 서 있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운영하는 누리집이다. 이 연구에서 활용한 한국어문회의 한자 가운데 25%의 한자가 훈이 한자어였다. 그리고 1,800자 바깥의 한자에서는 문서 편집기인 ‘아래 아 한글’의 한자 자전에 나오는 대표 훈을 따랐다.
  다섯째, 대표 훈이 유명한 게 2개여서 하나만 고르기 어려울 때 나머지 뜻도 반영했다. 다만, 이런 경우에 한자어 분류에서는 작은 실마리와 함께 혼란을 준다는 차원에서 2무리로 분류했다. 갚을 보/알릴 보, 무리 등/같을 등 따위가 대표 사례다.
  여섯째, 대표 훈이 고유어일 경우에 다의어라면 각각에 알맞은 뜻을 취했다. 예를 들어, ‘다스리다’라는 말이 ‘정치’에서는 ‘다스릴 치’로, ‘수리’에서는 ‘다스릴 리’로 훈을 대표하는데, 이 두 경우에 ‘다스리다’의 뜻을 달리 잡았다. 이는 조사자의 머릿속 사전에 그 다의성이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자칫 4무리로 분류할 위험을 없애 한자 중시론에서 주장하는 명분에 전혀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만들어주고자 함이었다.
  일곱째, 한자어의 뜻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교과서 용례와 같은 것을 골랐다.

4.2. 한자어와 훈의 상관성 분석 실제

 

  이제 초등 4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를 예로 들어 한자어 의미와 한자 훈의 상관성에 따라 한자어를 분류한 실제를 보이겠다. 4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는 모두 250개다. 이를 구성 한자의 훈이 낱말 의미와 맺는 상관성에 따라 네 무리로 나누면 분포는 다음과 같다.


<표 2> 4-1 사회 교과서 한자어 갈래별 분포

 나눔

 1무리

 2무리

 3무리

 4무리

 합계

 낱말 수

 82

 35

 104

 29

 250

 비율

 33%

 14%

 42%

 11%

 100%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는 33%이고, 그 밖의 한자어가 67%이다. 무리마다 어떤 한자어가 들어 있는지 1무리부터 차례로 살펴보겠다.


4.2.1.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 실례


  1무리에 속하는 한자어는 ‘감소, 건립, 계획적, 고랭지, 고령화, 공동, 교사, 귀촌, 기초, 노인, 당선자, 매립장, 모의, 모집, 모형, 목장, 반영, 방지, 방파제, 배식, 보수, 보육, 보행자, 분석, 불만, 사무실, 산간, 산지촌, 생산량, 소음, 수거, 수리, 수질, 수집, 어부, 연설문, 예상, 예측, 외국산, 용지, 우수, 운행, 읍내, 인근, 임업, 자치, 재배, 재생, 저수지, 적절, 전시실, 전용, 정화, 제공, 제기, 제시, 제출, 조선, 종사, 지대, 차로, 체육, 초대, 최근, 추진, 축, 축산, 출산, 출퇴근, 탁, 탐방로, 토양, 판매량, 포장, 해양, 현장, 혼잡, 확충, 회관, 휴가, 휴식처, 희망’ 등 82개였다.
  이 한자어들은 낱말 의미와 한자 훈 사이의 상관성이 높아서 한자 훈을 더하면 낱말 의미의 정체에 거의 맞아떨어진다. 물론 ‘고랭지, 고령화’처럼 제도적, 학술적 규정을 강하게 담고 있는 용어라면 겉모습 정도만 표현해준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이런 한자어는 한자의 훈을 이루는 고유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한자어의 사전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한자 지식이 도움이 된다.
  다만, 한자 지식을 이용하려면 훈으로 잡힌 고유어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고장난 물건을 고칠 때 쓰는 말인 ‘수리’에서 ‘다스릴 리(理)’의 뜻을 제대로 모른다면 ‘수리’는 4무리로 분류될 수도 있다. ‘다스리다’에는 ‘다스릴 치’가 사용된 ‘자치’처럼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의 뜻도 있지만, 다른 뜻으로 ‘어지러운 일이나 상태를 수습하여 바로잡다.’가 있다. 마찬가지로 ‘제공’의 이바지할 공(供)에서 ‘이바지하다’의 뜻으로 ‘도움이 되게 하다’만 알고 있다면 이 한자어 역시 4무리로 분류될 것이다. 그런데 ‘이바지하다’에는 ‘물건들을 갖추어 바라지하다.’는 뜻이 있고, ‘바라지’는 ‘음식이나 옷을 대어 주거나 온갖 일을 돌보아 주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공’이 1무리의 한자어로 분류된다.


4.2.2. 훈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 실례


  이 한자어들은 학생들이 처음 배울 때 한자 훈으로 한자어 의미를 해석하려 들면 고개를 갸웃하거나 너무 두루뭉술하다고 느낄 말들이다. 하나하나 그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구 家口: 사람 수를 입에 비유한다.
갈등 葛藤: 칡과 등나무의 얽힘을 비유로 사용한다.
과태료 過怠料: ‘헤아릴 료’에서 돈의 뜻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국가 國家: ‘집 가’를 왜 붙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군수 郡守: 고을을 지킨다는 뜻으로 직위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업 企業: 일을 꾀한다는 뜻에서 영리를 떠올리기 어렵다.
낭비 浪費: 정도에 넘친다는 뜻을 물결에 비유하였다.
단체 團體: 둥글게 몸을 묶었다는 식으로 의역해야 한다.
단체장 團體長: ‘길 장’에서 ‘우두머리 장’으로 훈을 하나 더 익혀야 한다.
등고선 等高線: 무리 등에서 같을 등으로 훈을 하나 더 익혀야 한다.
미술관 美術館: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단지 미술이라고 한정하기 어렵다.
반면 反面: 얼굴을 돌린다는 행위의 의역이다.
부서 部署: 부서를 마을에 비유한다.
비밀 祕密: 빽빽하다는 ‘밀’의 뜻이 왜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비용 費用: 쓰는 돈의 개념이 핵심인데 빠져 있다.
삼면 三面: 얼굴에서 면으로 확대되는 훈을 알아야 한다.
상하수도 上下水道: 윗물, 아랫물이 비유임을 알아야 한다.
서예 書藝: 붓글씨 쓰는 예술 영역을 재주에 한정시킨다.
선거 選擧: 무엇을 드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소방서 消防署: 기관을 마을에 비유한다.
소홀 疏忽: 구성 훈의 힘이 너무 약하다.  
시장 市長: 행정구역을 저자에 비유한다.
심각 深刻: 중대하거나 절박하다는 뜻의 비유에 해당한다.
양옥 洋屋: 서양을 바다로 표현한다.
예산 豫算: 계획의 의미가 빠져 있다.   
이상 以上: 써 이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이장 里長: ‘길 장’에서 ‘우두머리 장’으로 확대되는 훈을 알아야 한다.
인구 人口: 사람 수를 입에 비유한다.
접수 接受: 이을 접이 무엇을 잇는다는 뜻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주의 注意: 뜻을 물 대듯이 붓는다는 비유가 들어 있다.
처리 處理: ‘곳 처’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 靑年: 푸르다는 뜻으로 젊음을 비유한다.
촌락 村落: ‘떨어질 락’은 주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학습내용 學習內容: 안에 담긴 것을 얼굴에 비유한다.
홍보 弘報: ‘갚을 보’의 다른 훈인 ‘알릴 보’를 알아야 한다.

 

  덧붙이자면, 과태료(過怠料)에 쓰는 ‘헤아릴 료’는 밭에 양분으로 주는 비료(肥料), 음식을 만드는 요리(料理)에도 함께 쓰는 글자이니, 쓰임새에 따라 부여한 의미와 각각의 경우를 구별하는 일은 낱말의 의미를 통으로 외우는 일보다 더 번거로울 때가 많다. 비용(費用)과 낭비(浪費)에서도 같은 ‘쓸 비’를 사용하지만, 비용은 ‘돈’이라는 뜻에 한정되고, ‘낭비’는 돈 문제에서도 사용하지만 비교적 ‘물자’를 펑펑 쓰는 쪽에 자주 사용한다. 언어적 장면이 매우 다르다고 하겠다.
  이 한자어들은 1무리에 비해 구성 한자의 훈과 상관성이 매우 낮다. 한자어 이해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모호함도 함께 따라붙는 낱말들이다.


4.2.3.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어 실례


  3무리 한자어들은 한자의 훈이 한자음을 포함(기계 계, 기록할 록)하고 있거나 한자의 훈이 음과 같은 한자(층 층, 편할 편)를 담고 있다. 가끔 ‘지경 역’처럼 음이 훈에 포함되지 않은 한자도 있지만, 이 역시 계속 따져 들어가면 ‘지경’ 또한 ‘땅 지, 지경 경’으로 돌고 돈다. 3무리에 속하는 104개의 한자어 가운데 몇 가지만 골라 그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런 낱말을 습득하는 과정을 짚어 보자.
  대표적으로 ‘감독’은 ‘볼 감, 감독할 독’이라는 두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감독’의 뜻을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감독’이라는 한자어의 뜻을 영원히 파악할 수 없거나 무조건 외워야 하거나,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말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세 가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대개 둘째와 셋째일 것이다. 따라서 이 한자를 알기 전에, 또는 이 한자들을 배우기 전에 우리는 ‘감독’이라는 한자어의 뜻을 알고 있었거나 이 말을 사용하면서 차차 알게 된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감옥’은 ‘볼 감, 감옥 옥’이니 여기서도 감옥의 뜻을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이 한자 풀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감옥‘의 뜻을 알고 있었다면 한자 풀이는 필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자를 배우기 전에라도 3무리에 속하는 한자어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었거나 처음 만났을 당시엔 몰랐더라도 이 낱말을 사용하면서 점차 그 의미를 알게 된다고 추론하는 게 마땅하다. 다양한 삶의 체험과 언어 사용에서 보고 들은 언어적 장면들이 우리 머릿속 사전에 쌓여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미 머릿속 사전에 들어 있는 개념들은 분명 또 다른 개념을 형성하는 데에 발판 노릇을 한다. 따라서 3무리에 속하는 한자어의 구성 한자 가운데 훈이 한자어인 한자의 개념을 이미 머릿속 사전에 가지고 있다면 사실상 3무리의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것은 한자를 알아야만 한자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한자 중시론의 주장을 지지하는 해석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한자어 이해에서 한자 지식이 필수 요건이 아님을 뜻한다. 단지 한자어를 개별 한자로 분해하여 그 의미를 사후적으로 정비할 때 그것이 한자의 조합임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한자 지식의 역할은 더 나가지 못한다.


4.2.4. 훈과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 실례


  4무리로 분류한 한자어 29개는 왜 구성 한자들의 훈을 더하여 뜻에 닿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까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격 價格: 돈으로 표현하는 데에 격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강의 講義: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건설 建設: ‘베풀 설’의 뜻이 닿지 않는다.
극장 劇場: ‘심할 극’의 뜻이 닿지 않는다.
기구 器具: 그릇이라는 말을 너무 확장하여 쓰고 있다.
단속 團束: 의역에 의역을 거듭해야 겨우 뜻에 닿을 수 있다.
대기 大氣: 공기의 뜻을 찾을 수 없다.
대상 對象: 코끼리와 대상을 연결하기 어렵다.
도지사 道知事: 행정 책임자의 의미를 꺼낼 수 없다.
면적 面積: 면을 쌓아야 할 필요를 잘 모르겠다.
명단 名單: 개별 이름표가 아니라 이름 목록이라는 쓰임새가 더 강하다.
무료 無料: 돈의 의미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방안 方案: 책상에서 안건이나 생각으로 확대하기 어렵다.
분포 分布: 베를 나누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사실 事實: 열매의 뜻이 너무 모호하다.
산책로 散策路: 꾀가 흩어지는 것이 산책의 의미인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선생 先生-: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선생은 아니다.
실시 實施: 열매와 베푼다는 뜻이 실시의 어감과 잘 닿지 않는다.
실제 實際:실제는 때와 관계가 없다.
실천 實踐: 열매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여건 與件: 물건과 여건을 연결하기 어렵다.
제안 提案: ‘책상 안’을 ‘안건 안’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제안서 提案書: ‘책상 안’을 ‘안건 안’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찬성 贊成: 남을 돕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밝히는 행위의 의미가 안 드러난다.
취미 趣味: 맛을 끈다는 뜻인지 오해하기 쉽다.
행사 行使: ‘하여금 사, 부릴 사’가 낱말 의미에 제대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호소 號召: 호소는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다.
후보 候補: 날씨(기후)와 후보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억지로 이해하려 든다면 위 한자어 가운데 그냥저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이 낱말들을 써온 어른의 어휘 감각이지 한자를 이용하여 낱말의 의미를 가르치려 들 때 학생들이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분포, 산책, 후보’와 같은 말은 이런 한자어가 만들어진 일화가 있다면 모를까 한자 훈만으로는 도무지 낱말 의미에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일반적인 어감으로는 ‘열매 실’, ‘나눌 분’, ‘베풀 시’ 따위 고유어 훈으로 등장하는 ‘열매’, ‘나누다’, ‘베풀다’와 같은 말이 한자어 의미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이는 이 낱말들이 지닌 구체성에 비해 너무 추상적이거나 다양한 의미를 과중하게 부여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베풀다’는 말은 1,800자의 한자 가운데 다섯 글자의 훈으로 등장한다. 베풀 시(施, 시설, 실시), 베풀 설(設, 건설, 설문), 베풀 선(宣, 선언), 베풀 장(張, 긴장, 주장), 베풀 진(陳, 진정) 따위다. 국어사전에 올라있는 ‘베풀다’의 뜻은 ‘일을 차려 벌이다’라는 뜻과 ‘남에게 도움을 주다’라는 뜻인데, 이 풀이로는 한자의 훈과 한자어의 의미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기 어렵다. 이것이 고유어 어휘 교육의 문제인지, 아니면 한자의 훈을 이루는 고유어의 의미가 바뀌거나 사용이 줄어 벌어진 일인지는 분명치 않다. 시간 흐름에 따른 낱말 의미의 변화는 중국과 달리 한자의 뜻을 명시적인 훈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 한자의 운명적 한계일 수도 있다.


5.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와 훈의 상관성 분석 결과


5.1. 전체 분석 결과


앞서 밝힌 기준과 원칙에 따라 11,000여 개의 한자어를 분석하고 분류하니 과목별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표 3> 과목별 한자어와 훈의 상관성 분석 결과

 나눔

 1.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

 2. 훈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

 3.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어

 

 4. 훈과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

 합계

 국어

 낱말 수

1,198

 590

 1,670

 239

 3,697

 비율

32%

 16%

 45%

 7%

 100%

 사회

 낱말 수

 1,053

 568

 1,609

 240

 3,470

 비율

 30%

 16%

 47%

 7%

 100%

 과학

 낱말 수

 549

 285

 802

 87

 1,723

 비율

 32%

 16%

 47%

 5%

 100%

 도덕

 낱말 수

 667

 356

 984

 126

 2,133

 비율

 31%

 17%

 46%

 6%

 100%

 전체

 낱말 수

 3,467

 1,799

 5,065

 692

 11,023

 비율

 32%

 16%

 46%

 6%

 100%


  과목마다 한자어 네 무리의 분포는 거의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 한자어와 구성 한자의 훈 사이에 상관성이 높은 1무리는 전체 11,000여 개의 32%에 불과한 3,500여 개이고, 한자 훈이 실마리 정도만 제공해주거나 의역과 비유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전체의 16%다. 한자의 훈이 설명해주어야 할 한자음을 포함하고 있어 한자 풀이가 동어반복을 일으키는 한자어는 전체의 절반 가까운 46%이고, 한자 훈으로 한자어 의미를 끄집어내려다가는 오히려 잘못된 개념에 다다를 위험이 있는 한자어가 전체의 6%였다. 학년별 분포에서도 네 무리는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저학년에서는 1무리 위주였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무리에 속하는 한자어가 늘어나는 추세가 아니고, 전체 비율이 학년마다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상과 같은 분석 결과는 전반적으로 한자어와 그 구성 한자의 훈이 지닌 상관성이 그리 높지 않으므로 한자 지식을 동원하여 한자어를 가르치려는 전략이 적절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자 중시론에서도 한자어 이해에서 중요한 요소는 구성 한자의 훈이라고 전제하므로, 한자의 모양 암기나 노출이 관건인 한자 병기 및 한자 혼용의 근거는 더욱 박약하다. 연구 주제는 조금 다르지만 ‘의미 투명도’ 개념을 사용하여 한자어를 분석한 노명희(2008)의 다음과 같은 결론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자는 국어의 단어형성에서 큰 역할을 하지만 의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다양한 용법으로 쓰이고 있어서 구성성분의 의미로부터 전체 한자어의 의미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한자어의 투명성은 고유어나 외래어에 미치지 못하며 그만큼 투명도 판단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노명희 2008:110)

 

  한자 교육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가장 주된 명분, 즉 한자어는 한자에 바탕을 둔 말이므로 한자를 모르면 뜻을 알기 어렵다는 주장을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이처럼 한자어 이해를 위한 한자 활용이 오히려 그 명분의 기반을 무너뜨림을 알 수 있다. 즉, 한자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한자만으로는 한자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낱말 교육의 핵심 도구로 한자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5.2. 앞선 연구와 비교한 결과


  김왕규(2005)는 민현식‧김왕규 외(2003)의 연구에서 집계한 초등 교과서 속 상위 고빈도 한자어 300개를 대상으로 의미 투명도를 분류한 바 있다. 그 결과, 투명하다고 판단한 낱말은 60%인 186개,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것은 40%인 114개로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그는 이런 결과에 대해 민현식‧김왕규 외(2003:157)에서 “한자의 훈은 한자어 의미 이해 능력에 영향을 주는 중요 요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점은 한자 지식 교육이 어휘력과 매우 높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선행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속을 좀 더 들여다보면 김왕규(2005)의 결론이 그리 객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한자의 훈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점 점’, ‘책 책’과 같은 동음훈(同音訓), ‘규칙(規則; 법/법칙), 기록(記錄; 기록/기록)’과 같은 동단어훈(同單語訓) 등 동어반복에 불과한 한자가 들어 있는 낱말도 ‘투명’하다고 분류한 것이다. 그가 투명하다고 분류한 한자어 가운데 이런 낱말이 무려 50개나 된다.
  둘째, ‘가정(家庭; 집/뜰), 선생(先生; 먼저/날), 개발(開發; 열/일으킬)처럼 누가 봐도 구성 한자의 훈과 상관성이 낮거나 없는 말 21개가 투명하다고 분류되어 있어서 객관성을 얻기 어렵다. 이런 낱말의 면모는 다음과 같다: 공기(空氣; 빌/기운), 공장(工場; 장인/마당), 도형(圖形; 그림/모양), 사건(事件; 일/물건), 사회(社會; 모일/모일), 삼각형(三角形; 석/뿔/모양), 선생(先生; 먼저/날), 세계(世界; 인간/지경), 이상(以上; 써/위), 인구(人口; 사람/입), 자연(自然; 스스로/그러할), 중심(中心; 가운데/마음), 친구(親舊; 친할/옛), 편지(片紙; 조각/종이), 가정(家庭; 집/뜰), 각(角; 뿔), 변(邊; 가), 소수(小數; 작을/셈), 시(詩; 글), 위(爲; 할), 학생(學生; 배울/날).13)


13)삼각형, 소수, 각, 변 등 수학용어의 문제점은 허민(2016)을 참조할 것. 예를 들어 ’소수‘는 ’작은 수‘가 아니라 987.12처럼 큰 수에서도 수를 표현하는 형식이다. ‘각’ 또한 ’뿔(horn)’이 아니라 ‘각(angle)’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셋째, ‘고구려, 고려, 대한, 북한, 신라, 조선, 중국, 한국’과 같은 고유명사 8개도 투명하다고 분류하고, 그 밖에도 ‘책 3권(卷), 학생 3명(名), 3학년 3반(班), 2시 30분(分), 경기도(道), 서울시(市)’ 등 단위로 사용하는 6개의 한자도 투명하다고 분류했다. 고유명사나 단위는 원래 한자의 뜻과는 관계가 매우 적으므로 이를 투명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렇듯이, 김왕규(2005)가 투명하다고 판단한 186개 낱말 가운데 85개의 낱말은 도무지 투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훈이 동어반복에 불과한 한자가 포함된 한자어가 투명하다는 판단은 초등학생들이 동어반복인 그 훈을 안다는 전제 아래 이루어진 것인데, 그렇다면 그 한자를 몰랐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한자어의 의미를 투명하게 받아들인다고 해석해야 한다. 즉, 한자 지식이 낱말 이해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85개를 불투명한 것으로 돌린다면 전체 300개 낱말 가운데 투명한 것이 33%인 101개, 불투명한 것이 67%인 199개다.
  김왕규(2005)의 결과와는 달리, 박영의(1999)의 연구 결과는 초등 교과서 11,000여 개의 낱말을 분석한 본 연구의 결과와 매우 비슷하다. 김왕규(2005)의 연구가 단지 고빈도 한자어 300개라는 매우 제한된 수량의 자료를 분석한 데 비해, 박영의(1999)는 6차 교육과정 초등 4~6학년 읽기 교과서에 나오는 2,200여 개의 한자어를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자료 선정의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

 

“한자를 배워서 그 '훈’으로 직역이 되는 한자어는 전체 한자어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49%의 한자어는 「한한 사전」을 찾아서 보통 2~9개가 나와 있는 ‘뜻풀이(釋)’에 의존해야만 겨우 의미가 파악되는 것들이고, 21%의 한자어는 「한한 사전」으로도 의미 파악이 안 되거나 잘못 해석되는 것들이다. 결국, 70%의 한자어는 그 어려운 한자를 배워도 의미 해석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잘못 해석될 소지조차 있는 어휘들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어순 구조에서 중국어 어순의 한자어가 전체 한자어의 18%나 된다는 것 또한 해석상의 난점으로 작용한다.”(박영의 1999:41)

 

  한자 훈을 동원한 낱말 교육 전략이 그다지 효율이 높지 않거나 쓸모없다는 사정은 한자어 수학 용어 분석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허민(2016:65)에 따르자면 초중등 교육과정의 한자말 수학용어 575개 가운데 한자가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21%뿐이고, 나머지 79%는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잘못된 개념으로 이끌 위험을 지니고 있다.

 

5.3. ‘의미 투명도’ 연구에서 얻는 한자어 교육의 시사점

  그런데 한자 지식을 동원하여 한자어를 가르친다는 전략의 타당성을 검토할 때 어원 상관성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고려할 사항이 있다. 낱말의 사용 빈도다. 배성봉‧이광오‧박혜원(2012)은 한자어의 빈도를 기준으로 삼아 의미 투명성이 한자어의 인지와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자면 고빈도 한자어는 의미 투명도가 높은 말과 의미 투명도가 낮은 말 가운데 후자의 단어 인지가 약간 더 유리하였다. 즉, 자주 쓰는 말에서는 한자 형태소 지식이 단어 인지에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저빈도 한자어에서는 의미 투명도가 높은 한자어가 의미 투명도가 낮은 한자어보다 단어 인지에서 더 유리하였다. 이는 저빈도 한자어의 이해에서 한자 의미 투명도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론된다.

 

  “고빈도 단어의 경우는 단어 수준의 표상이 빨리 활성화되기 때문에 형태소 수준 표상의 활성화는 단어 수준 표상의 활성화와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저빈도 단어의 경우는 단어 수준 표상의 활성화가 늦기 때문에 형태소 수준 표상의 활성화의 결과는 단어 수준 표상과 충돌할 가능성이 없으며, 따라서 형태소 수준의 활성화가 단어 인지에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배성봉 외 2012:616)

 

  다음으로 저빈도 한자어 가운데 의미 투명도가 높은 낱말만을 골라 단어 수준의 학습과 한자 형태소 수준의 학습을 거친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보니, 한자 형태소를 아는 것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학습하는 것보다 단어 이해에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들이지만 빈도가 매우 낮은 단어들 즉, 어휘 품질이 낮은 단어들을 대상으로 형태적 정보를 강화하는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통제 조건인 단어 정의 조건에 비해 형태소 정의 조건이 훨씬 우월한 수행을 보여주었다.”(배성봉 외 2012:617)

 

  이들은 둘째 실험의 결과가 한자 기반 전문용어의 학습에 주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학생들이 학교 장면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개념들은 전문용어들을 통해 전달되는데, 전문용어의 대부분이 한자어이다. 학교에서는 주로 단어의 정의를 제공하고 단어를 암기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어휘 학습을 도모한다. 그러나 본 실험의 결과는 단어의 정의가 아니라 구성성분의 형태적 정보를 제공하여 의미적 투명도를 높여주는 방식―형태소 정의 조건―이 한자어 전문용어의 학습에 더 효율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배성봉 외 2012:617)

 

  이 결론만 보면 한자 중시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여기서 한자 지식이란 한자의 모양이 아니라 바로 한자의 훈이 지닌 뜻을 가리킨다. 배성봉 외(2012)의 둘째 실험에서는 한자의 의미 정보, 즉 훈만 가르쳐주어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다. 배성봉 외(2012)는 한자 모양 교육이 낱말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는 유보적이며, 한자 모양 교육 없이 훈에 대해서만 알려줘도 의미 투명도가 높은 저빈도 한자어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한다.

 

  “본 연구의 또 하나의 함의는 한자어의 인지 능력이 한자의 습득 없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독서 이해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한자의 교육을 고려한다. 본 연구는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서 반드시 한자를 습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한자의 교육 없이도 한자어의 이해는 향상될 수 있다. 한자어는 음절을 단위로 하는 의미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분들을 주의하고 학습하면 한자어의 이해는 향상될 수 있다.”(배성봉 외 2012:618)

 

  이들의 연구 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이렇다. 고빈도 한자어를 가르치는 데에는 굳이 한자 지식을 동원할 필요가 없으며, 한자 풀이를 이용하여 한자어 학습 어휘를 설명해주려 할 때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상은 ‘의미 투명도가 높은 저빈도 한자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에 주요하게 사용할 재료는 한자의 의미 정보인 ‘훈(새김)’이지 한자의 모양 표기가 아니다.


6. 낱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보편적 원리


6.1. 체험과 사용에 바탕을 둔 어휘 습득 과정의 보편성


  일부 극단적인 한자 혼용론자를 뺀다면, 한자를 중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기틀을 잡아주자는 게 목적이라고 말하므로, 그 실제 목표란 결국 어휘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어휘를 늘려나가고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고 풍부하게 알아가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에 앞에서 거들떠보지 않았던 고유어의 의미 이해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자어의 뜻이 고유어의 압축 번역이라면, 그 뜻은 한자에 있는 게 아니라 그에 앞서 고유어에 담긴 셈이니, 한자어 이해 이전에 고유어 이해의 구조를 살펴본다면 어휘의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한자의 훈과 음을 결합하는 일은 ‘하나=일=1’ 정도로 연결하여 짝을 맞추는 매우 단순한 활동이지 무어 그리 대단하고 창조적이랄 게 없다. ‘난이’와 같은 한자어의 뜻이야 그 훈인 고유어에 기대어 ‘어려움과 쉬움’이라고 알 수 있다지만, 이 고유어의 뜻은 어떻게 알게 된단 말인가? ‘어렵다’를 ‘쉽다’의 반대말이라고 설명한다면 ‘쉽다’는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럼에도 한자 문제를 논할 때 어느 누구도 ‘어렵다, 쉽다’와 같은 말의 뜻은 어떻게 알게 되느냐고 묻지 않는다. 한자어의 뜻이 구성 한자의 훈에서 온다고 주장할 때, 한자의 뜻을 이루는 고유어, 즉 ‘어려울 난’의 ‘어렵다’라는 낱말의 뜻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처럼 전제한다. 하지만 고유어라고 태어날 때부터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 리는 없다.
  낱말의 뜻은 내 머리 바깥의 세계와 내가 관계를 맺는 활동, 즉 체험 속에서 얻어진다. 두어 살의 어린아이가 숟가락을 드는 일, 신발을 신는 일부터 어렵고 쉬움을 체험하면서 아이에겐 그 상황과 언어적 장면의 공통된 속성이 기억으로 남는다. 이 기억에 바탕을 둔 개념은 신발의 짝을 맞추는 일, 순서대로 수를 세는 일 따위 좀 더 고차적인 두뇌 활동에서 어렵고 쉬움을 겪으며 확장되고 구체적으로 형성된다. 네 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바꿔 타는 일, 초등학교에 들어가 질문을 이해하고 셈을 해 답을 찾아내는 일, 중고교에서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 등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어린 시절의 느낌과는 또 다르다. 그러면서 어렵고 쉬움이 매우 상대적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또한, 지식 습득이나 인지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만이 아니라 남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일,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 도덕적 가치 판단을 내리는 일에서도 어렵고 쉬움을 경험한다.
  ‘어렵다’는 말은 이처럼 몸과 마음과 머리에서 힘이 달려 낑낑대던 모든 경험과 맞물려 있다. 특히 주위 사람들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누구든 그 상황과 맥락에 맞게 ‘어렵다’는 말을 사용하므로 그 다양한 언어적 장면이 머릿속에서 ‘어렵다’는 개념의 구성 자원으로 기능하게 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입 모양과 행동을 보면서 말의 소리와 의미, 어순 등의 사용 방법 따위를 깨달아간다고 한다. 이런 과정은 토마셀로의 ‘용법 기반 이론’으로 설명되는데, 이에 대해 안소진(2014)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언어 습득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듣는 발화를 분석하려 하고, 발화를 구성 요소로 분할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Tomasello 2003/김창구(역) 2011:64]. Tomasello(2003)을 따르면 아이들은 범주화 능력과 통계에 의거한 학습 능력을 자신이 경험하는 발화에 적용하여 문법을 발달시킨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발화에서 단어, 형태소, 구 등의 역할을 확인하고 추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다수의 발화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발견한 패턴을 가지고 추상적인 카테고리와 구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발화할 때는 자신의 구문 패턴을 발화의 틀로 사용한다. 이 틀에 단어, 형태소, 구 등을 삽입하여 언어공동체에서 이해될 수 있는 수준으로 관습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자신의 발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고 한다.”(안소진 2014:381~382)


  체험과 사용에 기반을 둔 어휘 의미 이해의 이런 원리는 고유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구성 한자의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를 포함하고 있어서 도무지 한자 풀이로는 낱말의 의미에 접근할 수 없는 3무리의 한자어, 즉, 고유어에 풀이를 기댈 수 없는 한자어인 ‘정도’와 같은 낱말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 또한 앞의 ‘어렵다’는 고유어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남들이 그 말을 사용할 때 드러나는 공통의 속성이 머릿속에 쌓여 능동적인 두뇌 활동 과정에서 점차 구체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체험을 겪으면서 능동적으로 개념을 구성한다.
  실은, 3무리의 한자어뿐만 아니라 2무리와 1무리의 한자어, 예를 들어 ‘부모, 자동차, 인구’와 같은 말도 생활 속 체험에서 그 낱말의 구체성을 쌓아가고 뜻을 알게 되며, 이를 나중에 문자와 연결할 뿐이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한자를 알아서 ‘부모, 학교’와 같은 말의 뜻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 낱말의 쓰임새를 자각하고 나름의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커서 이런 한자어의 구성을 한자와 연결하면 ‘사후 확인’ 차원에서 낱말의 뜻을 다시 한 번 다지는 활동이 될 뿐이다. 즉, 고유어의 뜻을 습득하는 원리와 과정이 한자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체험과 사용에 바탕을 둔 낱말 이해에 보편적인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6.2. 인지주의적 언어관에 선 어휘 교육의 필요성


  사람은 여러 가지 체험에서 얻은 어떤 대상과 활동의 다양한 속성을 머릿속에서 분류하여 저장하고, 다시 그 기억들의 능동적인 활동과 새로운 경험을 종합하여 현재의 개념을 구성한다. 이때 떠오르는 어휘의 의미는 국어사전의 정의에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체험의 양과 깊이에 따라, 그리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개념은 달라진다. 사전 풀이로는 ‘영리를 목적으로 모여 일하는 곳’이라는 ‘회사’가 아이에게는 ‘아침마다 엄마 아빠가 나만 떼어놓고 간다는 곳, 엄마 아빠에게 술 권하는 곳’ 정도의 개념이지만, 성인에게 ‘회사’는 ‘살림을 꾸려갈 돈을 벌어오는 곳, 나의 재능과 꿈을 실현하는 곳, 스트레스 생산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전쟁터’ 따위의 종합적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모일 회, 모일 사’ 정도의 한자 풀이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무수한 체험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 대상과 낱말과 상황에서 다양한 속성을 받아들여 분류하고 귀납적으로 개념을 구성한다. 그리고 어떤 구체적 상황에서 그 낱말이 지시하는 대상이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자기 몸의 요구와 문장의 틀에 맞춰 풀이한다. Kaschak, M. P. & Glenberg, A. M.(2000:508). 인지과학의 지시가설에 따르자면, 우리가 낱말에서 뽑아내는 생각을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라고 부르는데, 체험에서 얻은 개념을 바탕으로 사람은 문맥 속의 여러 낱말이 제시하는 다양한 ‘행동유도성’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문장 이해에까지 다다른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대상이나 개념이 인식 주체에 제공하는 ‘행동유도성’을 인식 주체가 능동적으로 묶어내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라는 말은 ‘편안함, 속도감, 위험, 졸리움, 교통 체증과 짜증, 지위 상징’ 따위 여러 가지 ‘행동유도성’을 제공한다. 신호등 근처에서 차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면 ‘위험’을, 외제차라는 말을 들으면 ‘지위 상징’이라는 ‘행동유도성’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자동차’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스스로 자, 움직일 동, 수레 차’라고 한자를 알려줄 수는 있으나 자동차라는 말이 주는 다양한 ‘행동유도성’을 이해시킬 수는 없다. 마치 살구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살구는 시다’라는 사람들 평을 외우듯이 그저 자동차의 사전식 풀이를 외우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자 훈을 더하면 한자어 뜻을 알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과 달리 현실의 언어생활에는 이런 생생하고 주체적인 사정이 담겨 있지만, 한자 중시론에서는 이를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이 상정하는 어휘의 의미가 구조주의적(객관주의적) 어휘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수행한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 분류 작업 역시 그와 같은 어휘관 위에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즉, 이 연구 자체가 한자 중시론이 안고 있는 한계를 똑같이 끌어안고 진행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자 중시론의 주장은 앞의 상관성 분석 결과에서 보았듯이, 한계가 있는 언어관을 그대로 적용해도 근거가 매우 박약한 셈이다.
  서혜경(2014)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어휘 의미 교육은 한자어 풀이나 사전적 의미 풀이 중심으로 매우 한정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의 바탕 철학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관점이었다고 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어휘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고, 문맥과 독립적인 순수한 명제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어휘가 가지는 의미적 요소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성분분석이나 의미분해 접근법을 취하며, 어휘의미는 본원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관에서의 어휘의미 교육은 어휘가 가지는 명제적 의미들을 학습하고, 의미의 본원소들을 분석하며, 어휘라는 형식에 담긴 문자적 의미 중심의 어휘 사용력을 넓히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서혜경 2014:3)

 

  종래의 구조주의 언어관에서는 한자어를 가르칠 때도 한자어의 ‘의미 원자’인 구성 한자의 훈에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학습자는 자신과 무관하게 규정된 의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낯선 낱말이 등장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낯선 어휘의 의미를 학습하는 것이 어휘량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되므로, 여기에 어휘 교육의 일차적 목표가 잡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낯선 낱말들을 한자 풀이나 사전적 정의를 외워 의미를 습득하게 하려면 그 효율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구성 한자의 훈과 상관성이 낮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학습자에게 살아 있는 어휘, 학습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어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낱말들은 다양한 노출과 사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체화되지 못하고 잊히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런 자연스러운 사정을 아쉬워하며 무리수를 두는 게 바로 강제적 암기 교육이다.
  구조주의 언어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지주의 언어론에서는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과 언어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본다. 서혜경(2014)에 따르면, 사람은 사전의 풀이를 암기하여 의미 파악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의미를 구성하고 개념화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휘의 의미는 객관적인 실재를 복제한 것이거나 사전의 풀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인지 체계 안에서 개념을 엮어가는 주체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동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단어의 의미 구성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활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어휘 교육이 어휘를 사용하는 활동, 즉 지금의 교육보다는 좀 더 글쓰기와 말하기, 개념과 연관된 활동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자어의 의미가 구성 한자의 훈으로 환원된다는 한자 중시론의 주장은 앞서 제시한 한자어 상관성 분석 결과에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지만, 낱말의 이해에 관한 근본적인 원리를 무시한 채 그 표층에서 작동하는 ‘짝 맞추기, 번역’의 작업을 ‘낱말 이해 과정’이라고 오인함으로써 낱말 이해의 일반 원리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 상관성이 높은 경우일지라도 한자의 단순한 뜻풀이는 사전의 정의보다도 훨씬 허술하기 때문에 사전에 정의된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 현실의 맥락적 의미를 잡아내는 데 한계가 많다. 낱말 교육 면에서 보자면 현실의 체험에서 얻는 생생함은 사라진 죽은 개념, 아니 아직 살아나지 못한 개념을 외우게 할 뿐이다.


7. 맺음말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11,000여 개의 한자어의 의미가 그 구성 한자의 훈과 어떤 상관성을 지니는지 분석한 결과,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는 전체의 32%뿐이었다. 나머지 68%는 한자가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잘못된 개념으로 이끌 위험이 있는 한자어다. 따라서 한자어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매우 약하다. 일부 한자어는 구성 한자의 훈과 상관성이 높아 낱말 이해에 한자 지식이 도움이 되지만, 한자음에 가려진 훈을 설명해주면 될 일이지 한자 모양을 가르치거나 한자로 표기하여 한자어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 어휘 습득은 체험과 사용에 기반을 두고 일어나므로, 이를 강화할 다양한 체험 활동과 글쓰기, 토론, 말하기 교육을 더 충실하게 설계하는 게 좋다. 한자 교육은 이렇게 의미를 자각한 어휘에 대해 사후 확인 차원에서 개념을 정비하는 데에 사용하는 보충적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자 기반 학습 용어가 어린 학생들에게 산더미처럼 제시된다는 문제점은 해결해야 한다. 낱말을 가르치기 위해 한자를 추가로 더 가르쳐야 한다면 오히려 학습 부담만 늘리는 꼴이다. 초등 3학년부터 나오는 수많은 한자 기반 학습 용어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개선해가야 한다.
  첫째, 용어를 바꿔야 한다. ‘즐문토기(櫛文土器)→빗살무늬토기, 타제석기(打製石器)→뗀석기, 백혈구(白血球)→흰피톨’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어려운 한자 기반 학습 용어를 토박이말이나 쉬운 말로 바꿔야 한다. 해방 뒤에 우리말로 쉽게 학술 용어를 만들고자 애썼던 결과가 많이 남아 있으니 이를 되살리고, 새로이 학술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둘째, 문장에서 어려운 한자어 대신 토박이말이나 쉬운 한자어를 사용하여야 한다. ‘소거하다’라는 말을 ‘없애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셋째, 초등 교육과정의 양을 줄이고 교육과정에 나오는 용어의 양도 줄여야 한다. 또한, 교육을 일방적인 지식 전달 과정으로 여기는 과거의 교육관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주체적인 지식 구성 능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관점을 바꿔야 지나치게 많은 학습 용어를 제시하는 폐단을 없앨 수 있다.
  하나의 단어가 현실을 다 담을 수 없을뿐더러, 새로운 개념을 번역할 때에는 더더욱 불완전함을 피할 수 없기에 조각조각의 한자가 제공하는 뜻이 전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해서는 결코 좋은 공부라고 할 수 없다. 어휘 교육에서는 문장 속 쓰임새, 관련어, 문법 성격, 어원을 두루 알려줘야 한다. 특히 다양한 문맥 속에서 다른 느낌으로 사용되는 쓰임새를 체험하고 이런 경험을 귀납적으로 정리하여 자신의 개념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도록 도와주는 어휘 교육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자 지식은 어린 시절보다는 어느 정도 한국어 체계를 내면화한 뒤에 중학교부터 한자어의 구성성분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갖추어도 낱말 익힘에 문제가 없다.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어휘 교육에서 보조적으로 사용해도 될 도구를 핵심이라고 앞장세움으로써 어휘 교육을 왜곡할 수도 있고, 중학교 수준부터 시행해도 될 한자 교육 및 활용을 초등 시절부터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의 부담만 키운다.


〈참고 문헌〉


감지연 외. 2012. 「국어기본법 등 위헌심판청구서」.
김왕규. 2005. 「한자 자훈(字訓) 이해와 한자어 의미 이해의 상관도」, 청람어문교육 30. 청람어문교육학회. 199~222쪽.
노명희. 2008. 「한자어의 구성성분과 의미 투명도」, 국어학 51. 국어학회. 89~113쪽.
민현식‧김왕규 외. 2003.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어 및 한자 분석 연구󰡕. 국립국어연구원.
박영의. 1999. 「한자의 ‘훈’과 한자어 의미의 상관성―초등학교 ‘읽기’ 교과서 어휘를 대상으로―」, 교육한글 11‧12호. 한글학회. 7~44쪽
배문정. 2016. 「한자어 교육의 인지과학적 고찰」, 한자어 이해 과정과 어원 지식의 역할. 한글문화연대.
배성봉‧이광오‧박혜원. 2012. 「한자어 인지와 학습에서 의미투명성의 효과」, 교육심리연구 26-2. 한국교육심리학회. 607~620쪽.
서혜경. 2014. 「국어 어휘의미 교육의 인지언어학적 연구」, 경북대학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
안소진. 2014. 「한자어 형태론의 제 문제와 어휘부」, 한국어학 62. 한국어학회. 373~394쪽.
이건범. 2016. 󰡔한자 신기루󰡕. 도서출판 피어나.
이건범. 2016. 「국어기본법 위헌심판 참고인 의견서」.
이건범. 2016.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 이해와 한자 어원의 상관성 분석」, 한자어 이해 과정과 어원 지식의 역할. 한글문화연대.
허민. 2016. 「한자말 수학용어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 한자어 이해 과정과 어원 지식의 역할. 한글문화연대.

Kaschak, M. P. & Glenberg, A. M. 2000. ‘Constructing meaning: The role of affordances and grammatical constructions in sentence comprehension’, Journal of memory and language, 43. 508-529.

 

 

 

이건범
  주소: [04157]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37길 46, 303호
  소속․직위: 한글문화연대 대표
  누리편지: thistiger@naver.com


<abstract>

 

An Analysis How Much the Knowledge of Chinese Characters Influence to Understand Sino-Korean Words in the Elementary-School Textbooks

 

Lee Gyeon-beom

 

The controversy concerning Chinese characters doesn’t decrease because of the belief that the knowledge of Chinese characters is indispensable for understanding Sino-Korean words (S-K words). This study aims to analyze correlation between S-K words and ‘hun(the Korean translation of a Chinese character)’ in order to determine whether the strategy using the knowledge of component Chinese Characters is reasonable for teaching S-K words.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11,000 S-K words in the elementary school textbooks, The words that have high correlation(ex. bu-mo(父母)) occupy 32%, low correlation(ex. dan-che(團體)) 16%, no correlation(ex. bi-nan(非難)) 6%, and the words that the hun has except but the character’s sound(ex. hun-bub(憲法)) occupy 46%. The high-correlated words can be accessed to the meaning of the words through compounding the huns of the component Chinese character, but the others can’t be.
The strategy using the knowledge of Chinese characters for understanding the S-K words is available for only 32% of them, so we can not adopt that strategy on vocabulary education in general. Furthermore, the knowledge of Chinese characters needed on S-K words education is not the knowledge of the character’s shape but the hun, the meaning part, so there is little theoretical basis to expose Chinese characters or to make students memorize them.


* Key words: Sino-Korean words, meaning, vocabulary education,
 correlation, hun(the Korean translation of a Chinese
 character), semantic transparency.

 

 

 

〈논문 받은 날: 2017. 1. 2.〉
〈심사한 날: 2017. 1. 13.~2. 6.〉
〈싣기로 한 날: 2017. 2. 9.〉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