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생활 2013년 제23권 제3호 · 가을]에 실린 글

 

한글날은 어떻게 다시 공휴일이 되었는가?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한글날이 23년만에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세계의 흐름을 뒤쫓아 2004년부터 주5일제 시행에 들어가 노동 시간이 줄어든 사정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뜻밖의 일이다. 국경일이자 공휴일이었던 제헌절은 외레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인, 특히 대기업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가며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든 데에는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생각이 많이 바뀐 사정이 크게 작용하였다. 문화 국가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경제 논리를 넘어선 것이다.


2002년 8월 14일, 한글날이 국경일이기를 바라는 기자회견장에서.화면 앞줄 왼쪽이 글쓴이.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만들자는 운동에 앞장섰던 한 사람으로서 나에게는 두 가지의 운동 논리를 개발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첫째, 한글날을 왜 굳이 공휴일로 만들어야 하는가? 둘째, 경제에 부작용은 없는가?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말과 한글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주 불거져나오는 질문이었다.
  첫 질문의 답은 언어 문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기념일 문화를 연결하여 찾으려 했다. 특히 아이들이 난리를 치는 ‘밸런타인 데이’처럼 전 국민에게 낯익은 기념일 문화의 효과에서 도움을 받았다. 둘째 질문의 답은 한글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점과 한국 경제의 앞날에 미칠 영향에서 찾고자 했다. 여기서는 한글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변화를 잡아내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 유럽의 근대사에 기댔다. 이런 논리가 어떠한 실천과 맺어져 국민의 마음을 끌어모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겠다. 먼저 한글날의 역사부터 짚어 보자.
 
1. 언어와 문화의 가치를 깨달아간 역사


  2005년에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해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네 날이었다. 1949년 10월 1일에 제정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4대 국경일을 정하였으며, 이 네 날은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한글날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기려왔고 미군정 당시에도 공휴일이었지만 국경일에는 끼지 못했다.
  한글날은 1926년에 처음으로 기념식을 갖고 기리기 시작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반포한 1446년 이후 여덟 번 째 회갑, 즉 480돌이 된 때였다.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와 신민사가 공동 주최하여 ‘식도원’이라는 요리집에서 식을 치렀다. 당시 기념식에는 수백 명이 참석하여 꽤 성대하였다고 한다. 이날은 양력 10월 9일이 아니라 11월 4일이었다. 이 날이 음력으로 9월 29일이었는데,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실록의 기록에 따라 음력 9월 29일을 반포한 날로 잡은 것이다. 기념식을 거행하는 중에 이 날을 부를 이름을 ‘가갸날’로 결정하였다. 이후 주시경 선생이 이름 붙인 ‘한글’이 알려지면서 차차 한글날로 부르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양력 중심으로 생활이 바뀌자 한글날도 1932년 무렵부터 양력 10월 29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이극로의 기록에 따르면 1932년부터 양력으로 기념하였다 한다. 이 날짜는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한 것이었는데, 양력은 1582년 이후 그레고리력으로 바뀌었으므로 양력 계산을 그레고리력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1934년부터는 10월 28일에 한글날 기념식을 열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는 기념식을 거행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한글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1945년 해방 뒤부터 10월 9일에 공개적으로 한글날을 기리기 시작했다.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 ‘9월 상한’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에 따라 음력 9월 상순에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했던 것이다. 1949년 6월 4일 제정한 대통령령 제 124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에서 한글날은 공휴일로 정해졌으나 그 지위는 기념일이었다.
  여기서 좀 낯선 질문이지만 한글날은 왜 건국 직후 국경일이 되지 못했을까를 헤아려보자. 건국 초기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논의는 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 일제에 맞선 삼일절과 해방된 광복절, 헌법을 만든 제헌절, 우리 민족이 최초로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개천절 등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국가 수립에 정통성을 부여한 날만이 국경일로 정해진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라는 자각은 적었다. 물론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 때문에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공문서의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대한민국 법률 가운데 여섯 번째로 만들어질 만큼 공식적으로는 한글을 중시하였지만, 한국의 문자 생활은 1960년대 말까지 국한문 혼용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직은 사회가 문화 역량에 그다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91년부터 노태우 정부는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과 국군의 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이런 결정의 배경도 앞의 사정과 맞닿아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 운동이 급성장하면서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에 힘 겨루기가 심해지자 노동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공휴일을 줄인 것인데,  한글날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즉, 문화는 경제 성장의 희생양이 되어도 좋다는 정도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복원하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졌지만 97년 말 외환위기 등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2011년 9월 1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일인시위.2012년 10월 5일 광화문광장 일인시위.

  이에 국어운동계에서는 전략을 바꾸어 한글날을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국경일로 만들자는 목표 아래  2001년부터 “한글날 국경일 범국민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국민 운동을 펼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류가 번져나가기 시작하자 한글날의 지위를 높이려는 노력은 차차 힘을 얻어 가고, 마침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2005년 10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지정 촉구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리고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2005년 11월 30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 개정안은 2005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그러나 국경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문제는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바, 이는 쉽지 않았다. 2005년 7월부터 시행되는 행정기관 주 40시간 근무제에 맞춰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2005년 6월에 개정하였고, 이에 따라 2008년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는 제외되는 상황이었기에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하자는 주장의 설득력이 약했던 것이다. 결국 소규모로 전개되던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운동은 한글날이 국경일로 기념된 첫해인 2006년으로부터 6년이 지난 2012년에서야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연합”이라는 조직 결성과 함께 대규모 국민운동으로 전개되어 2012년 12월 24일에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국민과 국회의 한글날 공휴일 지정 여론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2. 한글날 모른다고 뭐 그리 문제인가?


  2006년부터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뒤에도 문화부의 조사에 따르자면 국민 가운데 한글날이 며칠인지 모르는 사람은 계속 늘어가는 추세였다. 2009년 11.9%에서 2011년 37%로 늘었으며, 특히 한글날 공휴일을 경험하지 못한 20대와 청소년에서 모르는 비율이 60%가 넘게 나타날 정도였다. 이런 까닭에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어 국민이 한글날을 기억하고 한글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자는 국어 운동계의 주장이 이어졌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한글날에 관해 교육을 잘 시킬 일이지 반드시 공휴일로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한글날을 그저 하나의 정보 차원에서 아느냐 마느냐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
  한글은 우리 민족 문화에서 가장 뛰어나고 자랑할만한 유산이지만 단지 기념해야할 유물은 아니다. 한글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현재와 미래의 살아 있는 생필품이다. 그런데 외국어와 어려운 말, 폭력적인 말 때문에 우리의 언어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는 상황이었기에 사회 전체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특별히 기려야 할 계기를 만들 필요가 높아지고 있었다. 한글은 입말과 소리를 적는 매우 과학적인 문자 체계라 사라지거나 훼손될 위험이 적지만 한글로 적어야 할 우리말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야 구분 없이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 용어에서도 오픈 프라이머리, 컨센서스, 매니페스토, 학력 블라인드, 거버넌스 등 헤아릴 수 없는 외국어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었다.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왜 국민이 알아듣기 힘든 말과 글을 사용하겠는가? 늘 의식적으로 머슴 자세를 지키려는 긴장감이 없고, 그 긴장감을 불어넣어줄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장치가 바로 한글날 공휴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를 국민에게 낯익은 기념일 문화에 비유하여 개발한 한글날 공휴일 지정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들이 잊어먹었다가는 낭패보는 날들이 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가 그렇다. 제과업체의 상혼을 비판하는 말도 많지만, 반드시 나쁜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남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기념일이란 그 사건이나 사람과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다. 한글날을 공휴로 되살려 민주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되짚는 장치로 만들어야 한다.”(2012년 5월 18일 경향신문)


  어떤 이유보다도 한글이 민주적 의사소통의 토대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한글의 소중함을 단순히 유산의 차원에 묶어두어서는 안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글의 창제정신은 국민이 소통하는 데에 겪는 어려움을 풀겠다는 애민정신이었다. 우리네 말글을 잘 다듬는 일은 민족문화 발전이라는 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시야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넓혀야 한다고 본다. 어떠한 시민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무에서 배제당해선 안 된다. 여기서 언어가 중요하다. 정치나 행정의 절차, 또는 참여기회에 구멍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공적인 언어의 측면에서도 문제를 봐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논리 구조로 2012년 3월에 서울시민 발언대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고 여러 차례 글을 썼다. 거리에서 시민을 상대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면 늘 밸런타인 데이 이야기를 빗대어 설득하였다. 한글과 경제, 한글과 민주주의, 언어 환경과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장치가 바로 한글날 공휴일 지정인 것이다.

 

3.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추진 운동의 흐름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만들자는 운동에는 이 대의에 공감하는 여러 갈래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졌다. 오랫동안 국어운동의 일선에서 한글 사랑, 국어 사랑을 실천해오신 원로 선배들의 전통적인 관점, 나처럼 한글날을 언어 환경 개선의 장치로 만들자는 관점, 근로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만드는 데에 함께 힘을 보탠다는 관점 등이다. 이 세 갈래의 흐름은 서로 대립하지 않았다. 모두 한글 사랑을 밑바탕에 깔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면서 강조점을 약간씩 달리했을 뿐이다. 세 흐름은 2013년 3월에 거대한 하나의 물줄기로 모이게 된다.
  운동의 발원지는 국어 단체 쪽이었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몇 년 동안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주장해온 국어 단체들이 2012년 2월에 세 차례 회의를 거쳐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연합”을 결성하여 이 운동을 추진하기로 굳세게 뜻을 모았다. 이 자리에는 학부모 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도 함께 있었다. 당시 준비모임에서는 국민의 여론이 매우 좋고 김황식 국무총리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인적으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적극 찬동하는 입장이라 국민운동을 전개한다면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데에 생각이 모였다.
  그리하여 국어 단체와 시민 단체, 교육 단체, 학부모 단체, 노동 단체, 문화 단체 등을 널리 모으고 국민들에게 믿음을 얻고 있는 사회 원로 분들을 모셔 2012년 3월 말에 범국민기구를 발족하기로 결의하였다. 추진 실무에서는 이대로(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오동춘(짚신문학회 회장), 송환웅(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 이건범(한글문화연대 정책위원), 김한빛나리(한글학회 부장), 이인범(한글문화연대 사무국장), 안재응(세종대왕기념사업회 부장) 등이 앞장섰고, 전체 사무국 역할은 한글문화연대가 맡았다. 한편으로 한글문화연대는 4월 총선에 나선 여야 후보를 대상으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관한 의견 조사에 들어갔다.
  2012년 3월 28일 아침 10시에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연합”(줄여서 ‘한글날연합’)은 한글학회 얼말글 교육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이어 11시에 세종로 정부청사 뒷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의 국어 단체와 참교육학부모회, 전국국어교사모임,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국작가회의, 흥사단 등 46개의 단체가 결집하였으며,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가 한글날연합의 상임대표를 맡았다. 공동대표는 고경희(한글문화연대 대표), 고영회(대한기술사협회 회장), 김영훈(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중남(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반재철(흥사단 이사장), 이강택(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시영(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용득(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임종건(전 서울경제신문 사장), 정의용(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차재경(한글사랑운동본부 회장) 등 12인이 맡았으며, 짚신문학회 오동춘 회장이 감사를 맡았다. 

2012년 5월 9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 기자회견.

2012년 6월 1일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서 펼친 서명운동.


  또한 김석득(연세대학교 부총장), 김종택(한글학회 회장), 박종국(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백낙청(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엄기원(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임창열(경기일보 대표이사 회장, 전 경제부총리) 등 30명의 사회 원로로 고문단을 꾸렸다.  그리고 김수업(전 대구가돌릭대학교 총장), 김영명(한림대학교 교수, 전 한글문화연대 대표), 노회찬(전 국회의원), 박선영(국회의원)), 성낙수(외솔회 회장), 신기남(국회의원),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101인으로 자문단을 꾸렸다.
  한글날연합의지도위원으로는 김종일(뉴라이트학부모연합 상임대표), 류종열(흥사단 부이사장), 리의도(춘천교육대학교 교수), 송현(시인, 한글문화원 원장), 유병한(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윤지희(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장은숙(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등 76인과 추진위원 413인이 활동을 시작했다. 실무를 맡은 집행위원회는 고운맘(스님), 송환웅(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 문성근(흥사단 기획국장), 이건범, 김한빛나리, 안재응, 이인범, 길양희(외솔회 간사), 김종범(E교육신문 편집장) 등 9인으로 구성하여 이대로 상임대표와 함께 운동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을 맡았으며, 한글문화연대가 한글날연합의 사무국 구실을 하기로 했다.
  한글날연합은 출범 선언문에서 “한글은 사람 존중과 민주주의의 철학을 담고 있는 글자”이고 “이 철학과 정신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국민 누구나 글자를 익히고 쓸 수 있게 되어 세계 역사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글의 가치를 규정하였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대한민국 헌법 9조의 규정에 따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빨리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한글을 더욱 빛나게 하고, 국민 자긍심을 드높여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 밑바탕을 다져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19대 총선 246개 선거구 여야 후보 492명을 대상으로 한글문화연대가 조사한 설문 결과도 발표하였다. 492명 가운데 41.7%인 205명이 조사에 응하였는바, 여야를 떠나 96.1%가 공휴일 지정에 찬성하였다.
  이러한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한글날연합은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아홉 차례 거리 서명 운동을 벌였으며, 참가 단체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과 온라인 서명운동도 함께 펼쳤다.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2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여론에서 84%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소설가 이외수 씨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자고 트위터에 올린 글은 삽시간에 3,000회 이상 재전송되었다. 2012년 5월 9일, 한글날연합은 행정안전부(지금의 안전행정부)에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추진을 공개적으로 묻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 담당자에게 강력하게 요구 사항을 전달하였다. 9월 18일에는 행정안전부에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국민청원서를 내면서 7만여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한글날 공휴일 여론이 거세어지자 10월 9일 한글날 경축식장에서 경축행사 직전에 국어 단체 대표들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함께 한 자리에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출하면 행정안전부에서 국무회의에 안건을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반대하던 이전의 태도와는 달라진 첫 의사 표명이었다. 같은 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한글날 공휴일 지정촉구 결의안을 심사, 가결하였다. 바야흐로 한글날연합의 운동이 목표를 이룰 듯한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러나 역시 걸림돌은 경제, 아니 대기업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앞장서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일하는 날이 하루 줄면 그만큼 생산과 수출이 줄어 한국 경제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단골 놀리를 앞세우면서. 나는 두 가지 각도에서 경총의 논리를 깨뜨려갔다. 첫째는 그들의 경제 논리에 역시 경제 논리로 맞서는 방법, 다른 하나는 경제 논리만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가치와 품격을 강조하는 방법이었다.
  경총의 논리 가운데 일반 국민에게도 설득력이 있던 것은 “노는 날이 늘어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세 가지 함정으로 짜여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노는 날이 정말로 많은지 어떤지 국민들이 모른다. 둘째로 휴일 수와 경제 간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른다. 셋째로 경제의 어려움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를 경총이 둘러대고 있다. 난 이 논리의 맹점을 짚기 위해 한글날연합 출범 전부터 대한민국의 연중 평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였다. 또한 한글날연합은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상생을 거부하는 대기업의 전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모두 목소리를 모았으며,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의 대표 단체가 그들의 생존을 방패 삼아 한글날 공휴일 지정에 반대한다는 허구를 비판하였다.

2012년 10월 30일,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앞에서 펼친 도끼상소.


  그러나 논리적인 비판만으로는 경총의 권이를 흔들기에 부족하였다. 이에 한글문화연대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각도에서 이 문제를 고민하도록 주문하는 색다른 시위를 기획하였다. 2012년 10월 23일 오전 11시에 한글문화연대 대표인 내가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멍석 위에 꿇어 앉아 ‘도끼 상소’를 벌인 것이다. 원래 도끼 상소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려던 시점에 최만리 일파가 한글 반포를 반대하며 벌인 것이었다. 최만리는 자신의 한글 반포 반대가 잘못된 것이라면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부수어도 좋다며 상소를 올렸는데, 나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드는 일이 이 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잘못된 일이라면 내 머리를 도끼로 쳐도 좋다며 경총이라는 ‘경제 권력’에게 상소를 하는 모양을 취했다. 일방적인 비난과 공격이 아니라 울면서 사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도끼 상소는 수많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에게 퍼졌고, 경총이 지나치게 대기업의 욕심만 차리는 게 아니냐는 여론을 일으키는 데에 지렛대가 되었다.
  도끼 상소 이틀 뒤인 10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정안전부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고, 같은 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은 한글날 공휴일 지정촉구 결의안을 제안하였따. 이런 분위기를 굳히기 위해 한글문화연대는 10월 30일에 광화문 광장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글날 공휴일 굳히기 떡을 돌렸다. 11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한글날 공휴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상정되어 재석의원 197명 가운데 찬성 189명, 반대 4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되었다. 같은 날 경총은 행정안전부에 '한글날 공휴일 지정 관련 경영계 건의서'를 보내 반대 뜻을 밝히며, 기존 공휴일 수를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공휴일 우선 순위를 재조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맞서 한글날연합은 11월 5일 경총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총은 조작과 거짓으로 자신의 욕심을 가리고 있는 가면을 벗어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경총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11월 8일 행정안전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예고 기간은12월 18일까지 40일이었다. 이 기간 동안 심각한 반대나 갈등이 없다면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될 것이었다. 국민 여론을 잘 지켜야하는 경기 종료 5분 전이었던 셈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경총의 논리를 정확하게 반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계를 설득하는 두 가지 글을 써서 마지막 수비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연중 노동시간이 2011년 기준으로 2,200시간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연중 노동시간은 1800시간이었다. 400시간을 하루 8시간에 주 5일로 셈해 보면 두 달 넘게 더 일을 하는 꼴이니, 우리는 1년 열두 달이 아니라 열네 달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경총은 휴일 숫자를 조작해가면서 국민을 협박하고 있었다. 연차휴가를 포함해 1년에 134일 이상을 쉬니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휴일을 갖고 있는 실정인데, 거기에 한글날 하루 더 놀면 경제에 타격이 오고,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가 힘들어진다는 논리였다. 토요일, 일요일이 52주니까 104일이 일하지 않는 날이고, 법정 공휴일은 15일, 연차휴가는 15일에서 25일 사이라서 134~144일을 쉰다는 게 경총의 주장이었다. 난 이를 정교하게 계산하여 입법 예고 다음날인 11월 9일에 “대기업의 한글 사용료는 얼마일까”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반박 글을 실었다.

  “이건 숫자 조작이다. 경총은 빨간 날이 아닌 노동절까지 포함시켜 공휴일을 하루 늘려 놓았고, 그나마도 주말과 겹치는 공휴일이 평균 4일 정도 있다는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5일을 빼면 실질적인 공휴일은 10일이다. 또 우리나라 연차휴가일 수 평균은 15.3일이지만 실제 사용하는 날은 절반이 채 안된다. 나머지를 꼭 돈으로 보전해주지도 않는다. 후하게 계산해도 연차휴가는 8일이다. 다시 더해 보자. 104+10+8=122. 경총 주장보다 12일이 적다. 이는 경제 5단체가 10년 전에 주 5일제 도입을 반대하면서 내놓았던 선진국의 휴일 수 126.6일보다도 4일 이상 적은 수치다.
  10년 전에도 경제단체들은 일할 날이 줄면 경제가 망한다고 겁주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렇게 단순한 논리로 따진다면 연중 노동시간이 1500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북유럽 나라들은 왜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을까? 가장 긴 시간 일하는 나라의 휴일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 마술의 요령은 그저 ‘거짓말’일 뿐이다. 그리고 그 속내는 추한 이기심이다.
  (줄임)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랑, 우정, 긍지, 의리, 정의, 열정 등등 있으면 가난해도 삶이 풍요롭고, 없으면 돈이 많아도 삶이 구차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난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의 태도에서 가장 못마땅한 게 이 부분이다. 문화와 자긍심을 돈으로 재려 하는 그 천박함을 감추기 위해 이 나라 경제를 걱정하고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연민을 보내는 위선 말이다. 그렇게 나라가 걱정되면 세금 제대로 내고,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등을 치는 짓부터 그만두겠다고 국민 앞에 맹세해야 마땅하다.
  그래, 나도 천박하게 물어보자. 당신들이 매일 작성하는 보고서와 서류, 당신의 자녀들과 주고받는 문자까지 모두 한글로 쓰고 있다. 그 사용료는 누구에게 얼마나 지불할 셈인가?“(경향신문, 2012/11/09)


  한글날 공휴일 공방이 일고 있는 상태에서 달력 인쇄업체들은 2013년 10월 9일을 빨갛게 인쇄해야할지 어떨지 헷갈리고 있었다. 이에 한글문화연대는 다양한 크기로 빨간 색 ‘9’를 인쇄한 붙임딱지를 만들어 11월 22일부터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24일, 마침내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5. 한글, 성장의 발판에서 경제의 품격으로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말처럼 세계시장에서 문화가 만들어내는 마케팅 효과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대기업들이 한글날 공휴일 지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이기를 주문한다. 서구의 종교개혁은 라틴어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변두리 언어였던 영어와 독일어의 품격을 높이며 학문과 괗끼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마침내 산업혁명을 잉태한다. 우리 경제와 한글의 관계도 이런 각도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이다.


  “6·25전쟁 뒤에야 보통교육이 자리 잡은 한국이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장한 이유 중 하나도 한글이라는 문자였다. 어느 나라 글자보다 익히기 쉬운 한글이라는 축복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고, 양질의 노동력이 산업현장과 손쉽게 결합했다. 이런 점에서 한글은 분명 경제성장의 발판이었다.
  이제 한류 시대가 오면서 한글의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 세계인에게 한글은 문맹 퇴치의 상징을 넘어서서 한류 문화를 대표하는 시각적 상징이 되고 있다. 세계인의 눈길은 그 존재조차 몰랐던 변두리 언어인 한글과 한국말에 쏠리기 시작했고 관심은 폭발적이다.
  (줄임)
  한글이 과학과 애민사상의 융합이고 한국이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린다는 사실은 외국인에게 분명 문화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 충격은 세계인이 구찌의 장인 정신에서 느끼는 신뢰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신세계에 갖는 호기심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 즉 '사람 사랑'의 향기를 맡도록 자극할 것이다. 한글을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세계인은 한국 상품에서 가격이나 품질보다 품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제 효과는 기업이 붓는 마케팅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리라.“ (조선 일보, 2012/12/13)


   이렇듯 한글날을 공휴이로 만듦으로써 우리나라는 국내 언어 환경의 개선을 점검하는 장치를 얻었으며, 세계 속에서 품격 있는 문화국가라는 지위를 개척한 것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