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을 차별하는 단어 쓰시나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최지혜 기자
jihye0852@naver.com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언어는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이 만들고 쓰는 것이지만, 역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언어는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깊이 관여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속에서 소수자를 차별하는 언어가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 소수자는 사회 구성원 중에서도 특히 더 취약한 사람이나 집단이기에 이들에 관한 언어에는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차별적 언어가 소수자에게는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고, 더 나아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왜곡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서울시에서 차별적 의미를 담은 행정 용어 13개를 고치겠다고 발표하였다.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단어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서울시에서 고치는 단어들을 알아보고 생활 속에서 차별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자 서울시에서 고친 13개 단어 중 차별적 의미를 담은 단어 8개를 살펴보자.

 

‘정상인’, 바꿔야 할 차별적 표현

 

 ‘정상인’은 ‘비장애인’으로 고쳤다. ‘정상인’은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원래의 뜻만 보면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장애인과 대비하는 의미로 ‘정상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큰 문제가 있다. ‘정상인이 장애인 등록증을 위조’와 같이 쓸 때, 이렇듯 장애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정상인을 쓰는 것은 장애가 없으면 정상인, 장애가 있으면 비정상인이라는 느낌을 주고, 장애가 비정상이라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반대말로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 ‘비장애인’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장애우’는 장애인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로, ‘장애우와 함께 작업에 참여하다.’ 와 같이 쓰인다. 한동안 장애인을 ‘장애우’로 불러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었다. 심지어는 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 등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장애우’라는 단어는 장애인을 수동적이고 주체적이지 않은 인간으로 형상화한다. 장애인을 부드럽고 친근한 방식으로 부를 이유는 없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르는 것은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 동정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한 집단을 부르는 단어는 사회 속 그 집단의 위치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어떤 집단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장애우’라는 표현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들의 사회 속 위치를 왜곡하고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해칠 수 있으므로 ‘장애인’이라고 써야 한다.

 

같이 죽지 못하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
 ‘미망인’이라는 표현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다. ‘순직한 ○○○씨의 미망인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등과 같이 써왔다. ‘미망인(未亡人)’이란 《춘추좌씨전》 〈장공편〉에 나오는 말로 ‘남편을 여읜 여자’를 가리킨다.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는 단어 같지만, 이 단어에 쓰인 한자를 풀이하면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미처 그러지 못하고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과거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탱하던 사회에서는 여성의 정절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통제했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여성은 수절해야 했고, 죽은 남편을 따라 죽으면 열부로 이름이 나 칭송받았다. 이러한 불평등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여 남편을 여읜 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현대의 성 평등 관념에 들어맞지 않는다. 제3자가 홀로된 분에게 이러한 표현을 쓰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 된다. 이 단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2월 “한글 단체와 힘을 합쳐 품격 있는 단어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직접 언급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 단어는 ‘고○○○(씨)의 부인’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

 

 ‘학부형(學父兄)’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는 말’이고 ‘학부형 모임에 참석하다.’ 와 같이 쓰인다. 이 단어는 ‘학부모(學父母)’로 바꾸기로 했다. 학생의 보호자라는 범주에 아버지와 형만 들어 있고 여성인 어머니는 배제되어 있다. 학생의 보호자라는 역할의 수행자로서 남성만을 지목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누군가를 책임지고 보호해주는 것은 오랜 시간 남성의 역할로 생각되어 왔다. ‘학부형’은 이러한 성 고정관념에 박힌 구시대적 용어이기 때문에 학생의 보호자로서 아버지와 어머니,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학부모’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


누가 ‘결손’되고 ‘불우’하다고 정했나?
 ‘결손가족’은 ‘부부의 어느 한쪽, 또는 쌍방이 사망, 이혼, 별거, 유기 등의 원인에 의해서 결손이 되는 가족’이고, 그동안 ‘결손가족 돕기 성금’과 같이 널리 써왔다. 그렇지만 이 단어에도 차별적 요소가 들어 있다. ‘결손’이라는 단어는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불완전함.’이라는 의미가 있다. ‘결손가족’은 주로 ‘부모의 한쪽 또는 양쪽이 죽거나 이혼하거나 따로 살아서 미성년인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정’을 지칭한다. 부모가 양쪽 모두 있지 않은 가족은 불완전한 가족이라는 말이 어떤 인식을 낳을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정상적 가족 형태로 생각되고 또 장려되는, 결혼으로 결합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을 완전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 규범 내의 가족만 완전하고, 그렇지 않은 가족은 불완전하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렇듯 결손가족은 그릇된 가치판단이 개입된 용어이므로, 가족의 형태에 따른 사실만을 담고 있는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등으로 바꾸게 되었다.

 

 ‘편부, 편모’는 ‘어머니가 죽거나 이혼하여 홀로 있는 아버지, 아버지가 죽거나 이혼하여 홀로 있는 어머니’라는 뜻으로, ‘편부 아래에서 자랐다.’와 같이 쓰이곤 한다. ‘편(偏)’이라는 한자는 ‘치우치다, 쏠리다, 기울다, 편향되다’의 뜻을 지닌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치다’와 같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치우쳐 균형을 잃은 상태로 편부나 편모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를 담지 않은 ‘한부모’로 바꾸어 사용한다. ‘한부모’는 ‘편부, 편모’와 달리 남성, 여성 모두를 포괄하여 특정한 성을 지칭하지 않는 중립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불우’는 명사 앞에 쓰여 ‘살림이나 처지가 딱하고 어려움.’이라는 뜻을 더한다. 이웃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그를 섣불리 딱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동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려운 이웃을 함부로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그들에 대한 차별이다. 어려운 이웃들이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닌데,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불우이웃’은 딱하다는 시혜적 판단을 지워내고 실제 상황만을 담아낸 ‘어려운 이웃’으로 대체한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를 ‘조선족’이라고 불러왔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미국에 사는 우리 겨레는 재미 동포, 일본에 사는 우리 민족은 재일 동포라고 부르는데 중국만 유독 '조선족'이라고 부른다.”라며 "다른 지역과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 중국 동포로 바꾸기로 했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 외에도 그동안 조선족에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에서는 조선족을 주로 장기밀매업자, 살인자 등과 같이 부정적으로 묘사해왔다. 조선족을 왜곡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강화해왔다. 이렇게 덧씌워진 차별적 인식을 지워내기 위해서,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우리의 동포임을 강조하고자 ‘조선족’을 ‘중국동포’로 바꾸기로 하였다고 볼 수 있다.

▲ 바꿔야 할 말과 권하는 말이 정리된 목록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앞서 살펴본 소수자 차별적 단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단어의 의미를 학습하고 내재화한다. 사회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고 타자화되어 온 사람들을 또 차별하고 타자화하는 것이다.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차별적 언어에 담긴 그릇된 가치관을 내재화했을 때, 그 가치관이 차별적 행동과 차별적 태도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 행정 제도 내에서 소수자 차별적 단어가 사라지는 변화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행정 제도 안에서 소수자로서 차별적 대우를 받아오던 이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차별 또한 철폐해 나가는 중요한 근간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바꾸기로 한 13개 단어 중 8개의 소수자를 차별하는 단어를 통해 언어에 담긴 소수자를 차별하는 그릇된 인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사실 소수자를 차별하는 단어는 법 체제 내에서도,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우리말 속에 남아있는 또 다른 차별을 감지해내고,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