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붙는 광화문 현판, 한글 현판은 어떨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변용균 기자

gyun1157@naver.com

 

광화문의 의미

 

 우리나라 사람은 광화문광장을 서울의 중심이자 우리 국민의 뜻과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맨 앞에 광화문이 있다. 국민과 오랜 시간 함께한 이 광화문에는 중요한 문제 하나가 있다.

 지금의 광화문 명칭을 처음부터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었을 때 정도전이 사정문(四正門)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다가 1426년(세종 8년)에 집현전 학사들이 세종의 명으로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문(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6·25 때 수난을 겪으며 광화문은 훼손되었었다. 그 후에 지속적으로 복원하여 2010년에 현재 우리가 보는 광화문의 모습을 갖추었다. 광화문의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 가지 중요한 논쟁거리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현판이다.

 

광화문 현판, 계속되는 복원

▲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현판 (출처: 문화일보)       ▲ 현재 광화문 현판 (출처: 세계일보)

 

 광화문 현판은 1968년에 6·25전쟁 때 폭격으로 없어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쓴 한글 현판이 걸렸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광화문 재복원이 진행되어 2010년에 완공되었고 국민에게 새 모습을 보일 때 독재자의 친필 현판이라며 논란이 되던 한글 현판을 한자 현판으로 바꿨다. 이 현판은 조선 26대 왕 고종 때인 1865년에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썼던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체를 복원한 것으로 한자 현판이다. 따라서 현재 광화문에 걸려있는 현판은 2010년에 복원하여 걸렸던 현판이다.

 그런데 복원한 새 현판이 걸리고 약 3개월 만에 현판 오른쪽 부분에 금이 가면서 부실복원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와 동시에 현판의 색깔이 잘못 고증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나오면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다. 그러던 와중 2016년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Smithsonian Museum)에 있는 사진 자료 중 선교사가 찍은 광화문 사진을 근거로 현판의 색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과학적인 고증이 추가로 진행되었고 결국 2018년 1월 문화재청은 현재의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잘못된 고증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새롭게 고증된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로 제작을 하여 현판을 다시 걸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제는 한자 아닌 한글로

 

 이렇게 계속되는 현판 논란 속에서 광화문 현판을 이제는 한글로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해서 나왔다. 한글 학회의 연구위원인 김슬옹 씨는 “광화문 현판은 처음 세종대왕이 걸었던 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서 그대로 복원할 수가 없다.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복원의 논리만을 주장하며 한자 현판을 지키자는 말이 나오는데 결국 본래의 모습을 복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처음의 모습을 복원할 수 없다면, 세종이 이름을 명한 광화문인 만큼 세종의 뜻을 기려 한글로 현판을 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광화문은 한국의 상징적인 문이다. 그런 상징적인 문에는 우리 고유의 문자가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판이라는 것은 시대마다 바뀔 수 있기에 21세기 현시점에서 세종의 정신이 가장 많이 담긴 한글 현판을 거는 것이 복원이라는 의미를 지는 한자 현판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라고 말하며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봉선사 한글 현판 ‘큰법당’)                                          (▲봉선사 한글 현판 ‘법종루’)
(출처: http://camlhd2.blog.me)                                   (출처: http://chojunghun54.blog.me)

 

 한편, 한글 현판이 사용된 사례를 통해 한글 현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양주시에 있는 봉선사에서 한글 현판을 볼 수 있다. 입구인 일주문부터 시작해서 대웅전까지 한글로 현판이 걸려있다. 고려 시대인 969년에 창건된 고찰에 한자가 아닌 한글현판이 걸린 데에는 운허 스님(1892~1980)이 큰 영향을 미쳤다. 운허 스님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해방 이후에 불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현판을 한글로 만들어 거는 등 한글을 퍼뜨리는 데 힘을 쓰셨다. 특히 운허 스님은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던 대웅전을 복원하면서 현판에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썼다. 이처럼 옛것 그대로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봉선사가 보여주고 있다.


시대에 막힌 뜻 우리가 이루어야

 

 세종대왕이 사정문의 명칭을 광화문으로 변경한 시기가 1426년이다. 그리고 한글 창제는 1443년이다. 당시 한글이 반포된 후에도 한자가 더 널리 쓰이던 시대적인 상황으로 봤을 때 한글 창제가 더 빨랐다고 하여도 한글로 현판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한글은 대한민국 국민이 당연하게 사용하는 문자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과학적인 문자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세종대왕이 이름 붙인 광화문을 그의 문자로 쓰는 것이 어쩌면 세종대왕이 차마 할 수 없었던 뜻을 펼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 광화문의 현판을 한글로 쓰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야 할 문제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