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가 담긴 세종대학교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박찬미 기자
misongjong@naver.com

 

 

세종대학교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이름을 가진 건물이 많다. 건물의 이름뿐만 아니라 학교의 정문과 학교를 대표하는 교표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기자의 모교이기도 한 세종대학교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함께 되새겨보았다.


학교의 건물 및 상징에서 역사를 발견하다

            ▲ 세종대학교 정문.

 

먼저 세종대학교 정문이다. 여느 대학교와는 사뭇 다르게 정문의 모습이 굉장히 특이하다. 조선 시대 제4대 왕인 세종대왕에서 이름을 따온 ‘세종대학교’에 걸맞게 우리나라의 옛 건축물 느낌을 풍긴다. 무엇보다 한글로 새겨 정문에 걸어둔 현판은 세종대왕의 이름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정문에 걸릴 만큼 ‘세종대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위인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한글 창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옛 건축물 느낌의 정문은 실제로 창경궁의 정문인 명정문과 같은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건축 양식의 이름은 ‘배흘림 양식’이다. 배흘림 양식이란 고려 시대의 건축 양식 중 하나로,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나온 것을 일컫는 말이다. 배흘림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명정문 이외에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등이 있다.

             
     ▲ 세종대학교 교표.(출처: 세종대학교 홍보실)           ▲ 앙부일구.(출처: 위키백과)
 
세종대학교의 교표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관찰할 수 있다. 세종대왕 때 만든 해시계인 ‘앙부일구’의 영침이 교표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앙부일구는 1434년 세종대왕이 장영실 등에게 명령을 내려 만든 해시계다. 시계 안에 세로로 시각선을 긋고 13개의 가로줄로 24절기를 표시했다. 이때 영침은 시각을 표시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북극을 향하도록 비스듬히 세워 만들었다. 당시 만들었던 앙부일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졌지만, 조선 후기 현종, 숙종, 영조 때 다시 제작됐다.

             ▲ 세종대학교 집현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앞쪽에 ‘집현관’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집현관은 고려와 조선 초기의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집현전은 1420년(세종 2년) 이후 37년간 존속했으며 여러 학자와 정치가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집현전은 처음에 왕의 학문상 자문과 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1428년(세종 10년) 이후에는 유교적 의례를 정비하기 위해 집현전에서 옛 제도를 연구했으며 편찬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그 후 집현전은 간쟁을 담당하는 언론기관의 성격은 물론 국가의 정책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 기관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1456년(세조 2년)경에 일부 집현전 학자들이 단종의 복위를 몰래 시도한 ‘사육신 사건’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집현전은 폐지되었다.

               ▲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좌측, 출처: 중앙일보)

 

광개토관은 현재 세종대학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기자가 주로 수업을 듣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 이름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서 유래된 만큼 그 모습도 크고 웅장하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제19대 왕으로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인물로 특히 영토 및 세력 확장에서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 바로 서쪽으로는 요하, 남쪽으로는 임진강과 한강 일대, 그리고 동쪽으로는 두만강 하류 일대까지 점령하였다. 이와 함께 광개토대왕은 국내 정치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나라 동쪽에 세운 6성에 평양 백성들을 이주시켜 평양 천도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백성들에게 불교를 장려하기도 했다.

             ▲ 세종대학교 율곡관의 모습.

 

벚꽃 나무들 근처에 자리 잡은 율곡관은, 봄이 되면 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로 주변이 북적이곤 한다. 이 율곡관은 이이의 호 ‘율곡’에서 따온 이름이다.
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다. 그는 성리학의 이론 중 하나인 이기론에서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떨어진 채 작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기론이란 이와 기의 원리를 통해 사회, 자연,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이’는 만물의 규칙을 말하고 ‘기’는 세상을 이루는 기운을 뜻한다. 이러한 이이의 ‘이기일원론’은 중국 성리학에서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해명했다. 또한 조선의 성리학 수준을 중국 보다 높였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은 조선 시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가 남긴 저서로는 『성학집요』, 『격몽요결』 등이 있다.

             ▲ 세종대학교 충무관.

 

충무관은 율곡관 옆에 있다. 이곳은 주로 이과 관련 학과 재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장소다. 충무는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시호’라는 뜻이다. 충무를 받은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인물은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한 그는 특히 임진왜란에서 공을 굉장히 크게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그는 옥포대첩, 사천해전, 한산도대첩 등에서 일본을 크게 무찔렀다. 사천해전은 거북선을 이용한 전투로, 한산도대첩은 학익진 전술을 이용한 전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597년 명량대첩에서 적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지만, 뛰어난 통솔력과 용감성을 갖춘 위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 세종대학교 영실관

 

영실관은 장영실의 이름을 본떠 이름을 붙였다. 장영실이 과학 기술자인 만큼 영실관에는 여러 가지 과학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실험 수업을 듣고 있다.
장영실은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자로 본래 관노였다. 그는 동래현에서 관노로 지내다가 손재주를 인정받고 명나라에서 천문 기기를 만드는 공부를 하게 됐다. 1423년(세종5)에 궁에 속한 기술자가 됐으며 혼천의, 간의, 자격루, 앙부일구 등 다양한 과학 기기 들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건물 이름과 관련된 역사에 관심을 가져보자

지금까지 학교를 둘러보며 여러 가지 역사를 함께 살펴보았다. 집현전에서 끊임없이 연구했던 학자들, 용감하게 나라를 전성기로 만든 광개토대왕, 자신의 소신 있는 주장을 통해 나라 사상 발전에 기한 율곡 이이,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거머쥔 이순신 장군, 그리고 신분을 극복해 위대한 과학자로 남은 장영실까지. 일부이지만 건물의 이름을 우리나라의 역사와 위인들의 이름을 본떠 지은 것은 이들의 마음가짐과 성공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수업 듣느라 바빠 학생들은 정작 이러한 역사를 되새길 기회가 적다는 사실이다. 만약 학생들이 학교 건물 이름과 우리나라의 어떤 역사가 관련돼있는지 관심을 가진다면, 학교 건물이 단순히 수업하는 장소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관련 역사를 새겨보며 역사 속 인물들과 학자들의 성품과 태도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건물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며 역사의 소중함도 깨닫고, 학자 및 위인의 이룬 일들과 성품을 본받아 대학생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굳게 다져보면 어떨까.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