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여 나라를 태평하게 하라

세종은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이 피해를 입자 태종의 도움을 받아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더불어 북쪽의 여진족의 노략질에 대응하기 위하여 김종서, 최윤덕으로 하여금 4군 6진을 정비하여 오늘날 국토의 경계를 분명히 하였다. 또한 세종은 이 지역에 백성들이 없어서 국방력이 약해질 것을 염려하여 남방의 백성을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을 실시하였고, 그 지방의 사람을 그 지방의 관리로 임명하는 토관 제도(고려의 사심관 제도와 동일)를 실시하였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니라

세종이 우리식 농사 책을 펴내기 전에는 우리 농사 실정에 맞는 농사 책이 없었다. 그 대신에 우리나라 기후와 토질에 안 맞는 중국의 농사 책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농업 생산량은 낮았다. 세종은 이것을 올바르게 고치고자 우리나라 지역별 특성에 맞는 농사 책을 펴냄으로써 농업 생산량을 크게 높여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하였다.

 

재난에 대비하고 농법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라

세종은 각 지방의 강우량의 분포를 알아내는 어려움을 측우기를 발명함으로써 개선하였다. 이처럼 비온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를 만들고, 저수지 등의 물 높이를 젤 수 있는 양수표를 통해 홍수와 같은 재난을 대비하고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게하였다. 또한 농민에게 농사 시기를 정확히 알리고자 시간과 24절기를 알려주는 양부일구를 만들었다.

 

하늘의 이리를 정확히 파악하여 세계의 중심에 서라

세종은 궁궐에 천문 관측소 간의대를 설치하고 종합과학연구소의 흠경각을 지어 조선의 과학 수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흠경각은 세종의 침실 옆에 붙어있어 세종은 여기에서 밤낮으로 연구하였다. 이곳에는 각종 천문기기를 비롯하여 세계 최고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 등이 설치되어 백성을 위한 과학 연구를 수행하였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