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개헌, '알기 쉬운 헌법'으로 가자-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법무부에서 2015년 한글날에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보내 고치려 했다. 예를 들어 108조에 나오는 “相對方(상대방)과 通情(통정)한 虛僞(허위)의 意思表示(의사표시)”를 “상대방과 짜고 거짓으로 한 의사표시”라고, 낯설고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면서 한글전용으로 적겠다는 생각이었다. 19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탓에 물거품에 그치긴 했지만, 법령 분야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는 매우 중요한 시도였다.


1958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민법은 부끄럽게도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하던 일본 민법을 많이 베꼈던지라 우리는 쓰지 않는 일본어 한자어와 말투, 낯선 한자어가 그득하다. 1987년에 마련되긴 했으나 지금의 헌법도 낯선 한자어와 일본어 말투 따위 손질할 게 많다. 게다가 2016년에 헌법재판소에서 공문서는 한글전용이 마땅하다고 판결했음에도, 우리 헌법은 여전히 국한문 혼용이다. 한글전용으로 고쳐야 한다.


헌법은 민주시민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재라고 하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헌법을 읽으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운영 원리,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익힐 수 있어야 한다. 알기 쉬워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앞으로 민법과 형법 따위 주요 법률의 용어와 문장을 손질하는 데에 본보기가 될 정도여야 한다. 내년에 개헌을 한다면 내용뿐만 아니라 글도 고치자.


좋은 글을 쓰려면 한 문장은 두 줄인 100자를 넘기지 말라고 권하는데, 헌법의 머리말 구실을 하는 ‘전문’은 무려 아홉 줄, 400자가 넘는 한 문장짜리 전형적인 법조계 글이다. 부속 도서(딸린 섬), 입각한(선), 기망(속임) 따위 잘 쓰지 않는 한자어는 쉬운 말로 바꾸어야 한다. 낱말만 바꾸어서는 어색할 때가 많으므로 문장을 통째로 바꾸는 일도 꺼리지 말자.
말투에도 “모든 영역에 있어서”처럼 ‘~에 있어서’, “국민투표에 의하여”처럼 ‘~에 의하여’ 따위 일본말투가 꽤나 많이 들어 있다. 이런 말투가 일본식이냐 아니냐 입씨름할 사람도 있고, 일본어에서 왔더라도 이제는 굳어지지 않았냐고 따질 사람도 있으리라. 개인의 글이라면 나는 이를 문제삼지 않으련다. 하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바탕인 헌법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게 바꾸어야 한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일이다. 쉽고 멋진 우리말과 글의 본을 세우는 일이다. 제때를 놓치지 말자.

 

* 이 글은 2017년 12월 12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23018.html#csidxb518860eedb803295c95a4ee4235d4a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