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한글문화연대 기자단 4기 유원정 기자
ybwl81@naver.com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시인은 누구일까? 윤동주 시인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시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시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을 울리는 어떤 힘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매진이 되었고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가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다. 또한 작년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도 윤동주 시인의 시를 가사에 녹여낸 노래 <당신의 밤>이 인기를 끌었다.

 

 

올해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인은 27년간 짧은 생을 살고 젊은 나이로 순절했다. 9월에도 이런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한 여러 전시회가 열렸다. 군포시에서는 2017 독서대전의 하나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기획 전시회>를 열었다. 산본도서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에서 윤동주의 생애를 16개의 주제로 나눈 전시 작품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시인의 육필원고와 친필 서명도 공개되었다. 또한 따로 부스를 마련해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손 글씨로 그린 엽서와 관련 서적을 소개하고 판매했다. 그 외에도 청년 예술 전시팀 ‘청연’이 조용선 갤러리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했다. 윤동주의 시가 미술, 공예, 음악, 사진 등으로 다양하게 재해석 되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시회를 통해 살펴봤던 시인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그가 남긴 시와 그 의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윤동주의 일생
윤동주의 증조할아버지 윤재옥은 나날이 악랄해져 가는 일본의 수탈을 피하고자 함경북도 종성에서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하였다. 1917년 윤동주는 만주 간도성 명동촌에서 태어나 명동소학교를 졸업했다. 은진중학교, 숭실중학교, 광명중학교를 거쳐 1938년 연희전문 문과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최현배·김윤경의 조선어 신간을 비롯해 손진태의 역사, 이양하의 영문학 강의 등을 들으며 민족의식과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키웠다.


연희전문 3학년 때 윤동주는 2년 후배인 정병욱을 만났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정병욱에게 시집 필사본을 건네주며 보관해달라고 부탁했고, 정병욱은 해방 후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릿교대와 도시샤대학에서 유학했다. 그 무렵 미군 폭격기가 일본 본토 폭격을 시작했고, 일본은 조선에서도 징병제도를 실시했다. 이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지만 송몽규와 독립운동죄로 기소되어 2년형을 받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16일에 순절했다.
 
윤동주의 시
윤동주는 생전에 무명시인이었다. 사후 1947년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었고 48년에 유작 30편과 서시,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뤄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116편의 시가 전해졌다.

윤동주가 청년 문학도로 꿈을 키워가던 시기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점점 패망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던 시기였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강제 동원, 폭압 정치가 심각했다. 이런 암담한 시대에 윤동주는 「별헤는 밤」, 「서시」, 「쉽게 씌여진 시」 등을 썼고 우리에게 남겼다. 시인은 일제의 잔혹한 통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 시를 쓰려고 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느꼈다. 평온하지 못한 시대에 부끄럼 없는 삶을 소망했던 시인의 이상은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었다. 그 괴리를 괴로워했고 갈등했고 순수한 세계를 동경했다. 그리고 성찰하고 다짐하며 자신이 사는 삶을 직시하고 걸어가고자 했다. 이러한 시인의 감정은 「쉽게 씌여진 시」, 「서시」 등에서 나타난다. 다음의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낭송해보자.

 

쉽게 쓰여진 詩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 윤동주와 한글
윤동주는 한국의 대표적 저항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다른 시인들이 일본어나 한문으로 시를 쓸 때 윤동주는 한글로 시를 썼다. 현재 그 시대의 다른 시인들에 비해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는 많이 전해져 오는데,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보면 거의 완전한 한글체이다. 시인의 깔끔한 필체도 눈에 띈다.

 


그런데 중국의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윤동주가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게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으로 윤동주 시인의 증조부가 일제의 억압을 피해 중국으로 피난을 갔고, 윤동주도 그곳에서 태어난 것뿐이다. 또한 현재 조선 동포들이 중국 조선족이 되는 시점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한 1949년 이후인데 시기상 맞지 않는다. 시인은 시 「별 헤는 밤」에서 ‘패, 경, 옥’을 분명히 이국 소녀라고 썼다. 이 세 명의 이니셜은 윤동주가 소년 시절 대랍자 소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중국 소녀들 이름이다.

 

윤동주는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비정상적인 광기가 넘치던 시대에 살아갔던 시인이 일제로부터 독립한 미래를 꿈꾸며 부르지 않았을까.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가슴 아파했으며 그러한 나라에서 시를 쓰는 자신을 성찰했다. 또한 조선어 말살 정책이 시행되어도 계속해서 한글로 시를 썼던 것을 보면 그가 한글을 얼마나 사랑하고 지키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시어 속에 담긴 시인의 치열한 고민과 묵직한 힘이 느껴지기에 그의 시가 계속해서 사랑받는 것 같다. 시가 남아있는 한 이러한 시인의 마음이 계속해서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 참고문헌: 윤동주100년포럼, 『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 starlogo(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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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