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8] 김영명 공동대표
 

미국은 그렇다 치고 그것에 ‘반대’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상태일 때 우리는 반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반대의 대상을 일단 미국 정부나 그 정책으로 국한해 보자. 우선 미국 정부의 구성원이나 정책에 대해 보통 하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부시는 대통령 자격이 부족하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명분이 없다.’ ‘미국 정부는 너무 일방주의적인 정책을 펼친다.’ 등등. 이런 비판은 세계 전역에 관한 것이다. 이를 더 좁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나 한국에 주둔한 미국 관리나 장병들에게 적용해 보자. ‘한미 행정 협정은 불공평하다.’ ‘서울 한복판에 미군 기지가 있는 것은 너무하다.’ (그래서 용산의 미군 기지를 다른 데로 이전하였다.) ‘미군 헬리콥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춘천 시민들이 불편하다.’ (그래서 춘천의 캠프 페이지도 다른 데로 이전하였다.) ‘미 관리나 군인들이 교통 위반 범칙금을 너무 안 낸다.’ 등등. 이런 비판들이 나올 수 있고 실제로 많이 나왔다. 그러면 이런 비판은 반미인가 아닌가?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비판조차도 흔히 반미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이런 비판은 그 자체로서는 반미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정부나 지방 자치단체나 그 구성원들에 대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비판과 성격이 같기 때문이다. 그런 비판을 우리는 아무도 반한국적이나 반춘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비판은 그야말로 일상적이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미국 정부나 미국 관리에 대한 같은 종류의 비판을 반미 즉 미국 반대라고 생각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언급하기로 한다. 

 

그러면 이런 비판이나 불만이 말과 글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한국의 관리가 한미행정협정의 개정을 위해 미국 정부에 협상을 요구하면 이것은 반미인가? 물론 아니다. 주권국으로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요구이며, 또 있어야 하는 요구이다. 그러면 한국의 시민단체가 미군 기지의 이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거나 일인 시위를 하는 것은 어떤가? 이것 자체도 반미적인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거기에 반미적인 정서가 깔려 있을 수는 있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반미 성향의 사람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런 행위 자체를 반미 행위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1980년대처럼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여 농성하거나 미 문화원에 불을 지르면, 이는 반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반드시 폭력적이기 때문에 반미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동은 미국 정부의 정책 근본에 대한 반대 의사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반미’에서의 ‘반’ 즉 ‘반대’는 비판이나 불만 표출이 아니라 그 대상이 국가나 정부나 체제 또는 그 정책의 근간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며, 그것이 주로 적대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반미는 미국의 국가나 정부 정책을 전반적으로 부정하거나 이에 적대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위에서 본 구분과 비슷하게, 한국 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미국 체제 자체에 대한 ‘이념적’ 반미와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정책에 대한 ‘정책적’ 반미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정책적 반미는 진정한 반미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한다. 반미의 의미를 좀 더 엄격하게 규정한다는 뜻이다. 반미를 더 폭넓게 규정하는 것과 더 좁게 규정하는 것 그 자체에도 일정한 이념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반미를 넓게 규정하여 여러 다양한 현상들을 다 반미라고 생각하면 그에 대한 비판도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체제든 정책이든 미국에 대해 더 비판적인 사람은 반미를 더 좁게 보려고 할 것이고, 더 수용적인 사람은 반미를 더 넓게 규정하려고 할 것이다. 논리상 그렇게 된다.
 

반미의 뜻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반미의 반대로 여겨지는 ‘친미’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자. 친미를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미국과 친하다’는 뜻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친미에는 흔히 사대주의라는 말을 덧붙여서 ‘친미 사대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친미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활 양식이나 대중 문화나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를 우리는 친미라고 하지는 않는다. 초밥이나 우동을 좋아한다고 하여 친일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친미라는 것은 미국의 국가 질서를 옹호하고 미국의 세계 정책에 호의를 가지며 더 나아가 한국의 운명을 미국에 의존하려는 태도와 행동을 가리킨다. 따라서 반미와 친미는 서로 반대다. 그 사이에 미국에 대한 여러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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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