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8] 김영명 공동대표

 

요사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간 그리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신경전에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외교가 객관적인 국력에도 못 미치는 바보 외교(등신 외교라고 하려다 나 자신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바보 외교 정도로 써 준다)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한국 정부는 바보나 등신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런 바보 외교의 밑뿌리에는 전에 이 난에서 지적한 사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사대주의가 한미 관계를 지배하는 우리의 정신 사조인데, 그 결과 미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정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를 벗어난 일종의 정신 병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유독 ‘반미’에 민감하고 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 역시 그 한 모습이다. 이제부터 몇 회에 걸쳐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는 반미가 과연 어떤 것인지 한 번 짚어보려고 한다. 시작은 2002년이다.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가 귀가하던 여중생 두 명을 치어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 심미선 두 여학생이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소재 지방도에서 갓길을 걷다 주한 미 보병 2사단 소속 장갑차에 깔려 현장에서 숨졌다. 죄를 저지른 두 미군 사병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고, 이에 대해 한국 국민들의 반발이 크게 일어났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우리 법정이 처벌하지 못하는 한미 행정 협정의 부당성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두 미군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때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다. 노대통령은 당선되기 전 후보 시절에 ‘반미면 어떠냐’라고 씨부렁거려 많은 비판을 받았던 터라, 이런 ‘반미’ 항의들이 보수 인사들의 걱정을 자아내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일종의 이념 충돌이 일어났다. 그 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8년 5월에는 미국 쇠고기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이를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연일 일어났는데, 이를 두고 또 한 번 이념 충돌이 일어났다. 어느새 반미가 한국 사회에서 이념 논쟁의 초점으로 부상하였다. 대중매체와 학술단체들이 반미를 좋은 소재로 삼아 얘기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사회에는 반미가 하나의 저항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 반미는 어떤 내용의 것인가? 또 반미는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 바람직하다면 왜 그렇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또 왜 그런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분석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반미’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특정 가치관이나 이념에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도 하다. 이 글은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난 ‘반미’ 현상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정치, 사회, 이념, 윤리적인 문제들을 따져보고자 한다. 우선 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피고, 우리 사회에서 ‘반미’ 행동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고찰한다. 또 반미에 반대되는 친미와 제3의 길임을 주장하는 ‘용미’의 의미도 되새기고, 한미관계의 자세를 설정하는 데 고려되어야 할 실리와 윤리의 긴장 관계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반미라고 할 만한 것이 사실 별로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국익과 윤리의 다양한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선, 반미란 과연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보자. 그것은 간단히 말해 글자 그대로 미국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엇이 반미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반미라는 용어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를 규정해야 한다. 우선 미국이라고 할 때 미국의 어느 부분을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를 미국 국민과 국가, 정부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미국 ‘국민’들, 더 쉽게 말해 미국 사람들 일반에 반대한다면 이것은 두 말할 것 없이 반미에 속한다. 또 미국 ‘국가’에 반대한다는 것은 미국의 체제와 그 질서에 반대한다는 것으로, 미국의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 종교, 가치관, 생활양식에 반대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또한 반미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면 미국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반미인가 아닌가? 위의 경우와는 달리 이것은 판단하기 어렵다. 이 또한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정부 형태나 정부의 일반적인 행동 전반에 대한 반대인가, 아니면 특정 정책에 대한 반대인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것 곧 정부 형태나 정부의 일반적인 행동 전반에 대한 반대의 경우라면 반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뒤의 것 곧 특정한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 경우라면 반미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국가를 반대하면 반국가, 반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무현 정부나 그 정부의 정책들에 반대한다고 해서 반국가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좁혀서 미국 정부의 특정 부분, 가장 비근한 예로 대통령 개인이나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우리는 반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는 어렵다고 본다. 미국 정부 전반에 대한 반대의 경우보다 이는 더 반미라고 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반미라고 규정하는 것 중에서 ‘미국에 대한 반대’의 성격을 지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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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