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7] 김영명 공동대표


 

중국에게 대들거나 심지어 한족을 지배했던 많은 민족들이 결국 한족에게 흡수되고 동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요를 세웠던 거란족, 금을 세웠던 여진족, 원을 세웠던 몽골족(그들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쪼그러들었다), 청을 세웠던 여진족의 후예 만주족, 그들은 다 역사에서도 사라지고 세계 지도에서도 없어졌다. 그런데 우리 한민족은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투쟁을 얘기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명예를 지키고 용기를 북돋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역사의 사실과 꼭  맞지는 않다. 중국과 맞서 싸웠던 우리 조상들은 결굴 모두 중국에게 패배하고 나라가 망했다. 고조선은 한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한나라에게 망했고,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의 침략을 격퇴하며 대등하게 싸웠지만 결국 나당 연합에게 망하였다. 큰 나라에 맞서 싸울 만큼 우리 조상들의 힘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 기상이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소중한 자산임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모두 중국에게 패하고 망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에 통일 왕조들이 들어서자 우리 조상들은 그 통일된 중국에 맞서 싸울 힘이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취한 것이 바로 사대 정책이다. 당시의 국제 질서가 사대 교린의 질서였으니,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남은 것이 정말 사대 정책 때문이었을까? 그런 점도 있겠지만 순서를 거꾸로 하여, 살아남은 결과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사대 정책을 펼쳤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당초 우리가 민족으로서 살아남은 더 중요한 이유는 사대 정책보다는 우리 땅이 중국 본토에서 멀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베트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티베트는 조금 덜 멀어서 복속되었고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멀면 살아남고 가까우면 죽었겠는가는 미리 계산할 수 없고 결과론일 수밖에 없다. 거란족, 만주족 등은 우리보다 중국 중심에서 더 가까웠다. 그래서 한족과의 직접 투쟁이 불가피했고, 그래서 한때 중원을 정복할 수도 있었지만, 또 그래서 멸망했다. 우리는 중국에서 그들보다 더 멀어서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다. 특별한 이론이 아니고 그냥 역사 지도를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더 유식하게 말하면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설명이 된다. 우리와 비교하여 일본은 중국에서 더 멀리 떨어진 데가 바다까지 대륙과 갈라놓아 비교적 독자적인 자신의 정치체제와 문화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일본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고 우리의 영향도 받았지만, 중심국의 간섭이나 영향을 우리보다는 덜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거란족보다는 중국 중심에서 멀었기 때문에 거란족처럼 중국에 흡수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고, 반대로 일본보다는 중국에 가까웠기 때문에 일본보다 중국의 영향과 간섭을 더 크게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 민족의 생사에 그들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 조상들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 아래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잘 발휘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마저 부인하면 나는 뒷감당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한 민족의 생사에 지정학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잠깐 지적하였다. 그러나 역시 우리 조상들이 중국에 대하여 펼친 정책들이 우리의 운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작은 나라이니까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숙명이고 뒤처진 나라니까 앞선 나라의 문물을 본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선 왕조가 중국에게 대놓고 대들었다면 고구려처럼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불교와 유교, 한자, 화약, 종이, 만두 등등 앞선 문물을 중국에서 수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미개 야만 오랑캐로 살았을 것이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또 일본 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그것이 우리 것보다 앞섰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문물도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사대주의와 변두리 의식이 모두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무엇이든 정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에 대한 조선의 숭모와 미국에 대한 우리의 사대 의식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도가 지나쳐서 우리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부인하고 정신적 예속 상태로까지 빠졌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된 한 중요한 까닭을 독자에게 다시 환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대주의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지배층이나 엘리트들이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강대국의 엘리트들과 밀접한 정신적, 물질적 교류를 통하여 그들은 대중들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주장하거나 일제에 도전하고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은 직접 탄압 받지 않으면 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하고 변방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윤택하게 살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비루하게 사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사대주의는 우리 민족이 대외적으로 살아남은 외교 정책의 범위를 넘어서서 엘리트들의 대내적 지배 수단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랬다고 하더라도 국력이 커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런 국내외적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주체성과 자주성, 정체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필수 조건이다. 선진국은 국내총생산지수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이를 비판하면서 제시된 국민총‘행복’지수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의 확립도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물론 모든 것이 정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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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