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정희섭 기자

jheesup3@naver.com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인교회에서 받았던 달력이 있다. 3월면으로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월면으로 넘겨야 할 때가 됐다. 온종일 영어와 함께 살아간 지 세 달 남짓 되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달력에 한글로 적힌 교회 주소와 요일을 보면 여전히 반가울 뿐이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숫자는 바뀌지만 맨 아래에 있는 한글은 위치도, 모양도 그대로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사용했던 화면을 갈무리한 사진

내가 이곳에서 듣는 한 수업에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가 주변 나라에 주는 막대한 영향력에 관해 공부한 적이 있다. 교수님은 칠판에 “Americanization(미국화)”라는 단어를 쓰며, 학생들에게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지 말해보라 하셨다. 40명 남짓한 학생 중 나와 중국인 학생 1명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 본토의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단어를 말했다. 패스트푸드, 국방력, 세계를 지키는 경찰,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위시한 과학, 애플(APPLE)사로 대표되는 정보 통신 기술 등. 모두 흥미롭고 그럴듯한 단어들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미국의 영향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언어’, 즉 ‘영어’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다.

 

세계화 시대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이면서 동시에 영문학과에 다니는 나로서는 한글로 쓰인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도구로 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도 필연적으로 익숙해져야 한다. 한글이 가진 과학적, 역사적 이야기를 재미있고 알차게 풀어나가는 것도 지금 이곳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역할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하는 청년으로서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잘 습득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를 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활동 사진들

앞서 이야기했던 수업시간으로 돌아가 본다면, 학생들이 대답했던 것처럼 미국은 세계에 수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향력들의 결과는 미국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이 먼 곳까지 온, 나 같은 사람들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나라가 가진 ‘영향력’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 풍경이 조금은 억울하다. 가장 과학적이지도, 우수하지도 않으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습득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1년 전, 이맘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으로서 생애 첫 명함을 받으며 설렜었다.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낼 기대감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한 장씩 달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지금은 달력에 적힌 한글을 보고, 1년 전의 마음을 떠올리며 낯선 땅에서 ‘한글’에 관련한 마지막 기사를 쓰는 중이다. 발대식부터, 개인 누리집에 기사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을 거쳐 이제 낯선 이곳에서도 어떻게 세계 속에서 한글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한글 장식 물품들

1년 동안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로서 친구들에게 한글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한글을 알리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세계 속의 한글의 현 주소는 생각보다 냉혹했다. 이곳이 미국이어서 그럴 수 있다. 지난번 기사에서도 나누었던 것처럼, 이곳 미국에서 한글은 그다지 매력적인 대화 소재로 환영받지 못했다. 한글을 알리기 위한 우리의 움직임과 첫 발걸음도 갈 길이 정말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 덕분에 현실을 직시했다. 더 열심히 한글을 알려야겠다. 출국 전에 한글을 알릴 생각에 부풀어 이고 온 여러 예쁜 ‘한글’ 장식 물품도 더 열심히 나눠줘야겠다.


한인 교회에서 받았던 달력의 한글을 보며 반가워하는 나는 한국인이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숫자는 바뀌지만 위치도, 모양도 그대로인 한글은 언제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며 뿌리일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으로서의 활동을 마치는 지금, 한글을 보면 반가워하는 한글 사용자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은 이제 시작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