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 문자, 그게 뭔데?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간형우 기자
hyeongwookan@gmail.com

 

사람들에게 문자의 종류를 몇 가지 알고 있는지 묻는다면, 두 가지 정도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첫 번째는 문자의 종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가 있다고 답할 것이다. (기자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이렇게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표의 문자에선 글자 하나하나가 특정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와 달리 표음 문자에선 각각의 글자가 소리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글자, 한글은 어떤 문자일까?

 

대부분 한글은 표음문자라고만 알고 있다. 표음문자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글은 표음 문자를 뛰어넘은 자질 문자이다. 자질 문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알고 보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이 무엇인지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자질 문자가 무엇이고 한글이 왜 자질 문자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표음 문자와 음소 문자부터 살펴봐야 한다. 

 

표음 문자와 음소 문자

그림 1 <문자체계> (출처: 국립국어원 누리집)

문자의 종류는 크게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로 나뉜다. 위 그림 1에서 보듯이 표음 문자는 다시 한번 음절 문자와 음소 문자로 나뉜다. 먼저 음절 문자는 하나의 글자가 ‘너’ 같은 음절 전체에 해당한다. 이런 음절문자의 예로는 일본의 가나를 들 수 있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か라는 글자는 ‘카’라고 발음하는데, 이 글자 하나가 그냥 ‘카’라는 발음을 가졌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다. 힘력처럼 보이는 글자 ‘力’과 점을 찍은 듯한 ‘`’를 나누어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글은 이와 다르다. 예를 들어 ‘너’라는 글자에서 자음 ‘ㄴ’과 모음 ‘ㅓ’로 나누어진다. 즉, 한글은 하나의 글자에서 자음과 모음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자음 ‘ㄴ’도 고유의 소리를 나타내고, 모음 ‘ㅓ’도 고유의 소리를 표현한다. 이렇게 문자 기호 하나가 한 소리를 표현하는 문자를 음소문자라고 한다. 로마자 알파벳과 한글이 여기에 해당한다.


생각해보자. 음절문자보다 음소문자가 더 우수하다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음소 문자는 음절문자에 비해 적은 수의 문자 기호로 많은 글자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사실 세계 문자에서 우수한 문자라는 판정을 해도 좋다. 그런데, 음소 문자인 한글이 어떻게 자질 문자로 분류되는 것일까?

 

자질 문자, 그리고 한글 
한글의 ‘ㅋ’이나 ‘ㄲ’은 하나의 낱글자가 아니라, 한 획이 추가된 ‘ㄱ’과 두 개의 ‘ㄱ’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즉, ‘ㄱ’에서 출발해서 획을 더하거나 글자를 한번 더 써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거 문자를 너무 쉽게 만든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ㄱ’을 발음해보라.  그리고 ‘ㅋ’을 발음해보라. 발음할 때의 입 모양이 같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ㄲ’도 발음해보라. 어떤가?


이제는 ‘ㅁ’과 ‘ㅂ’과 ‘ㅍ’을 살펴보자. 혹시 자음만 발음하기 어렵다고 느낀다면 똑같은 모음 ‘ㅏ’를 붙인 ‘마’, ‘바’, ‘파’를 차례로 말해보자. 입술을 붙였다가 떼면서 발음하게 된다. 세 글자 똑같이! 다만, ‘마’는 입술을 떨면서 소리를 내고 ‘파’는 ‘바’에 비해 공기를 더 많이 터트리면서 소리를 낸다. 굉장히 체계적이다.


그렇다. 소리가 나는 위치가 같은 자음은 하나의 글자에서 획을 더하거나 글자를 한번 더 써서 소리를 내는 방식의 차이를 나타낸다. 즉, 발음위치와 발성방식에 따라 글자 모양이 비슷하면서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글자 모양이 소리의 자질을 구별하여 나타낸다는 것이다.

 

조금 더 학술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한글은 기본자 5개(ㄱ, ㄴ, ㅁ, ㅅ, ㅇ)가 소리가 나는 발성기관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졌고, 같은 발성기관에서 나는 소리는 같은 기본자에서 획을 더하거나 반복하여 소리는 내는 방식을 표현하였다.

그림 2 <한글 자음의 자질 문자적 성격>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의 다섯 가지 기본자에 가로획을 한 번 그으면 닫히는 느낌의 소리 성질(폐쇄성)을 갖고, 두 번 그으면 숨을 터트리듯이 소리를 내는 성질(유기성)을 가지며, 기본자를 중복하면 된소리의 성질(경음성)을 갖게 된다. 위 그림2의 표를 보면, 행과 열에 모인 문자 기호들이 유사한 음성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ㅋ’은 ‘ㄱ’보다 거센소리이며, ‘ㅂ’은 ‘ㅁ’보다, ‘ㅍ’은 ‘ㅂ’보다 거세다. 각 기본자에 획을 더함으로써 이 ‘거세다’는 특징이 공통으로 나타난다. 

 

이제 자질이란 말을 떠올려보자.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모양으로 소리가 나며 ‘ㅋ’과 ‘ㄲ’도 같은 모양으로 소리를 낸다. 혀뿌리가 목구멍에 놓인 모양을 글자가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같은 모양의 소리라서 글자 모양도 비슷하다. 숨을 어떻게 힘주어 내뱉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그것이 모양의 차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ㄷ’, ‘ㅌ’, ‘ㄸ’은 기본자 ‘ㄴ’과 같은 발성기관에서 소리가 난다. 그 차이는 글자 모양에서 각각 나타난다. 글자마다 글자의 독특한 특성인 ‘자질’을 가진 것이다. 한글은 이런 체계성을 가지고 있다. 매우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또한 우수한 문자라 할 수 있다.


한글이 지닌 이러한 체계성을 중시하여,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자질 문자’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그는 자질 문자의 유일한 예로서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소개한다. 한글 자음이나 모음을 나타내는 각각의 글자가 일정한 내적 특성, 즉 ‘자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모음을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간단히 살펴보자.

그림 3 <한글 모음의 자질문자적 성격>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모음자 역시 자질 문자의 특성을 보인다. 세 개의 기본자 ‘ㆍ, ㅡ, ㅣ’를 이용해 ‘ㅡ’의 위쪽과 아래쪽, ‘ㅣ’의 오른쪽과 왼쪽에 ‘ㆍ’를 덧붙이면 각각 ‘ㅗ,ㅜ,ㅏ,ㅓ’의 네 모음이 만들어진다. ‘ㅗ,ㅜ,ㅏ,ㅓ’는 ‘ㆍ’가 한번 배열된 단모음이라는 음성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림 3). 또한 ‘ㆍ’이 ‘ㅡ,ㅣ’의 위쪽이나 오른쪽에 배열되었을 경우에 양성모음의 특징을 가지고, 반대로 아래쪽이나 왼쪽에 배열되었을 때에는 음성모음의 특징을 지닌다는 체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현존하는 수많은 문자체계 중, 자질 문자적 성격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한글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세계 모든 글자의 순위를 매겼을 때, 한글이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단순히 한글날이 가까워질 때만 일시적으로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바르게 쓰기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한글을 자질 문자라고 분류했던 제프리 샘슨은 “한글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니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신이 되는 건가? 그만큼 훌륭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한글은 우리의 문자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일 자부심을 느끼고, 한글을 소중히 하고, 또한 올바르게 전파해야 하지 않을까.

한글은 표음문자이자, 음소문자이면서 자질문자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