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7] 김영명 공동대표


사대주의에 대하여(3)

 

비슷한 역사가 현대에도 이어졌다. 일제에서 해방된 뒤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엘리트들은 친일 부역 세력과 그 후손이거나 미국에 의존하는 친미 세력이었다. 자주 독립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세력은 분단 국가 수립 과정에서 패배하고 권력과 부의 핵심에서 멀어졌다. 김구, 김규식 등 남북협상 파나 중도파 정치인들이 모두 몰락하였다. 정치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대외 의존 엘리트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였다. 문화적 사대주의가 한국 문화의 지배적 사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사대주의는 엘리트층 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상당히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미국 문화, 일본 문화, 유럽 문화를 선망하고 추종하며 고유 문화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기도 하였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예컨대 박정희의 전통 문화 진흥 정책에서 보듯이 전통 문화와 민족 문화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이것이 폐쇄적 민족주의로 매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한국의 국력이 팽창하고 대외적 위상이 높아진 지금에는 이런 사대주의가 줄어들었을까? 그래야 할 것 같지만 사정은 다르다. 자주적 대외 정책의 추구는 오히려 이승만, 박정희 시절보다 더 줄어든 것 같다. 이승만은 사사건건 미국 측과 부딪혔고 박정희는 미국 정부와 부딪히면서 자주국방을 추구하기도 했는데, 전두환 이후의 정부들은 그 정도의 자주적인 행동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이승만과 박정희가 보인 미국 정부와의 갈등은 그들의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또 당시는 지금에 비해 한국이 미국과 대립함으로써 잃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미국에게 대거리를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승만과 박정희가 전두환이나 김대중보다 더 독자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구조적으로 미국에 훨씬 더 의존적이었던 과거에 한국 정부가 지금보다 더 독자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흥미로운 연구대상이다.


이렇게, 한국의 사대주의는 국력 증가와 무관하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 중요한 보기로, 미국 정부가 가져가라고 하는 국군의 전시 작전권을 한국의 보수 지배 엘리트들은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직 군사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군사적 토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 또 그들의 논리가 옳고 그름을 떠나, 근본적으로 그들은 대외 의존적 사고가 몸에 배어 미국에게 기대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기대는 것도 정도 문제인데, 그들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미국에게 덜 기대게 되는 상황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것이다. 한국의 자주성이나 정체성 따위는 애당초 그들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국의 외교 노선으로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제시하였는데, 이에 대해 보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한미 동맹을 해칠 큰 잘못이라고 질타하였다. 노무현의 정책 발표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경솔한 짓이었고, 균형자라는 말이 19세기 유럽의 세력 균형 시절 강대국 영국의 역할에서 나온 부적절한 용어였음은 사실이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가 균형 외교를 취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태에서도 미국의 대한 정책에 배치되는 어떠한 독자적인 정책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지배 엘리트들, 즉 보수 엘리트들의 사대주의적 심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20년 이상 끌고 있는 북핵 문제에서도 한국 정부는 아무런 독자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미국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결과 북핵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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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