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우리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경위를 밝히고 공식으로 사과한 뒤 관련자를 처벌해 주십시오.
 


  우리는 2016년 12월 26일 에스비에스 뉴스에서 보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과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 문서에는 한글문화연대가 2008년 광우병촛불집회, 2006년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에 관련되었기에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추정되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2008년 광우병촛불에 30만 원의 기금을 보냈고, 2006년에는 스크린 쿼터 사수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누리집 막대광고를 실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영어 몰입 교육 반대와 외국어 남용 반대에 뜻을 함께했던 시민사회 단체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며, 우리는 그런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글문화연대 10년사》에도 이 두 사건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그 두 가지 일에 이름을 올린 활동이 정당했다고 여기더라도, 한글문화연대에서 17년 동안 했던 일 가운데 일만 분의 일(1/10,000)도 안 되는 행적으로 우리 한글문화연대를 평가하거나 어떤 딱지를 붙이는 건 참으로 고약하고 나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 두 건의 활동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 우리가 그토록 쟁쟁한 ‘좌파단체’가 될 만큼 대단한 일이었던가요? 분명 한글문화연대는 어떤 특정한 정치 이념을 가지고 좁은 의미의 정치 활동을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외국어 남용에 맞서 줄기차게 싸웠습니다. 우리를 ‘좌파단체’라고 욕하는 조갑제 씨 등은 이런 일에 결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들이 영어 남용에 맞서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까? 정말 몇몇 공무원 말고는 상당수 공무원이 보도자료와 정책용어에 외국어를 섞어 쓰면서 외국어 남용을 부채질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말과 한글을 지켜야 할 헌법적 책무를 지닌 정부는 손 놓고 있었고, 우리는 열 포졸이 한 도둑을 못 잡는다는 속담과 정반대로 한 포졸이 열 도둑을 잡기 위해 코피를 쏟으며 일했습니다. 매년 3천 건가량의 석달치 중앙부처 보도자료를 분석하여 외국어 남용을 솎아내고, 온갖 곳에 외국어 남용을 멈춰달라는 요청이나 항의를 담은 공문을 보내고, 땡볕에 매서운 칼바람에 일인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한글날이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어 가장 혜택을 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공무원들입니다. 그럼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만드는 일에 가장 앞장서서 운동을 끌고 간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린 한글문화연대입니다.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여론을 조성하고 무더위에 거리서명을 진행하고, 공휴일 재지정에 가장 반대하던 경총 앞에서 늦가을 추이에 떨며 도끼 상소를 벌여 국민의 뜻을 모으고, 경총의 반대 논리를 모두 분석하여 반박 논리를 문체부에 제공하고, 한글날 공휴일의 의미를 경제로 국한하여 보지 말 것과 경제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도 보라고 신문에 글을 써 기업들을 다독인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조갑제 씨가 좌파단체라고 근거도 없이 몰아붙이는 한글문화연대였습니다.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문서의 한글전용을 규정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을 상대로 위헌심판을 청구한 일에 가장 열심히 대응했던 곳은 어디입니까? 해마다 바뀌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대응 방안을 제시하면서 헌법재판소에 홀로 의견서를 내고, 체계적인 대응논리를 개발하여 변호인에게 제공하고,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청구인들의 200여 쪽 넘는 청구서를 조목조목 분석하여 반박 의견서를 낸 곳이 어디입니까? 국어기본법을 제정한 이해당사자인 문화체육관광부보다 더 애가 타서 밤을 새워가며 추가적인 자료를 만들어 헌재에 내고 보충의견서를 낸 곳이 어디입니까? 오직 한글문화연대 한 곳뿐이었습니다. 2016년 11월 24일 헌재에서 이 위헌심판을 모두 기각할 때도 현장을 지켰던 이들은 우리 한글문화연대뿐이었습니다.

 

  공공언어 쉽게 쓰기, 언어문화개선 범국민연합, 한글박물관 건립과 운영, 한글날 행사 등에 가장 활발하게 정책 의견을 내고 실천 활동을 한 곳이 어디입니까? 매년 200명이 넘는 대학생과 200명이 넘는 청소년을 모아 우리말 사랑 활동을 펼치고, 이들을 돌보며 미래 세대를 키운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바로, 한글문화연대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려줘서 많은 사람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는 한글문화연대입니다.

 

  한글문화연대는 그런 단체입니다. 우리말과 한글이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문화 창조 수단이기에, 언어공동체에서 말과 글로 차별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문화 발전과 언어 인권을 위해 활동한 곳입니다. 그런 한글문화연대가 그토록 위험한 단체라면 왜 그 많은 일을 우리의 제안에 따라 시행했고, 우리에게 활동을 요청했습니까? 필요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부탁하고 당사자 모르게 몰래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짓은 도대체 어느 별의 생물체가 할 수 있는 짓입니까? 그게 서로 믿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관계입니까?

 

  우리를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제와 차별의 대상으로, 무언가 불온하고 위험한 집단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일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입니다. 문체부 모든 직원의 자녀가 자신과 부모 몰래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관리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기분 좋겠습니까? 정말 더럽게 기분 나쁘고 화가 나고 배신감과 모욕감을 느낍니다. 이는 당연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행위이므로 관련자들은 마땅히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문체부에 다음 세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우리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경위를 해명하십시오. 특검에서 블랙리스트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세세한 내역이 다 드러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얼렁뚱땅 변명하지 말고 어떤 사유로, 어떤 기준에서 우리가 올라갔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십시오.

 

  둘째,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자가 우리 한글문화연대에 공식적으로 사과하십시오. 물론 우리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에 오른 모든 이에게 문화체육관광부는 사과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사과문을 내면서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는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셋째, 문화체육관광부 안에서 우리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사람을 찾아내 처벌해 주십시오. 이 일을 주도한 김기춘, 조윤선 두 사람이 우리 한글문화연대를 알아 블랙리스트에 넣었을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2017년 1월 24일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 관련 기사 보기 2017.01.25. 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